기념일은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제정되는 기념일이 있기도 하고, 시대 변화 속에서 그 의미를 잃고 점차 잊혀져 가는 기념일도 있다. 그런가하면 시대적 조류에 밀려 사라져 가던 기념일을 다시 찾아 크게 기려야 할 날도 있다. 10월 24일에 맞이하는 국제연합(UN) 기념일이 그렇다.
조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무렵 이른바 신나게 노는 공휴일 가운데 하나였던 ‘UN데이’는 1976년 법정기념일에서 사라졌다. 아마 이제는 10월 24일, ‘유엔의 날’의 의미를 소중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유엔데이’는 이미 지나간 향수(鄕愁)가 되었다.
국제연합(UN) 기념일이야말로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다시 찾아 기념해야 할 날이다. 이는 공휴일 하나 더 늘려 놀고 보자는 마음도 아니고 유엔으로부터 결초심(結草心)의 도움을 받은 국가에서 자란 경험 때문만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바뀌어가는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이미 200여 년 전 칸트가 그의 ‘영구평화론’에서 말한바 세계시민의 이념을 공유하고 초(超)국가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며 나아가 인류가 발견한 평화의 가치를 함께 지키고 나누는 평화의 날로 삼자는 바램이다.
물론 아직 유엔의 활동이 보기에 미약하고 기대에 안 찰 때가 적지 않다. 회원국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고 골고루 반영되기 보다는 사안에 따라 일부 강대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강력한 집행력이나 영향력 부족으로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회원 국가의 규모로 보더라도, 193개 회원국을 가진 유엔을 넘어서는 다른 국제기구가 아직 없다. 글로벌 시대를 선도할 비전(vision)을 보더라도, 1945년 유엔헌장에 발표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제우호관계의 증진,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에 관한 국제협력 등등 이보다 더 큰 비전을 지닌 국제기구 또한 아직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지구촌은 이미 시간상으로 1일 생활권이요, 인터넷상으로 실시간 반응하는 사회로 그 시간과 거리가 과거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좁혀졌음에도, 단기간 안에 새롭게 전 지구적 국제기구를 만들 가능성 역시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오늘날 국제 사회 속에서 강력한 국제연합(UN)의 필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전 지구적 생태계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 대처, 국가 간 영토분쟁의 중재, 중동지방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인 IS(이슬람국가)의 문제 해결, 테러와 폭력 방지, 종교 갈등 중재, 에볼라 출혈열의 공동대처 등등 민족과 국가와 종교의 이해를 넘어 공정하고 실질적이며 효율적으로 대처할 강력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세상은 이미 근대사회를 넘어 탈근대(postmodernity)의 시대로 넘어왔고, 시대는 벌써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시대에서 세계화(globalization)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촌은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 문제 등등 근대 사회의 문제들로 갈등이 심각하다.
그런 면에서 지구촌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우애롭게 살자고 다짐하며 국제기구를 만든 1945년 10월 24일은 참으로 의미 날이다. 지구 역사 속에서 인류의 집단 지성이 일구어낸 가장 값진 합의(合意)이며 선언(宣言)이다.
그러고 보니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의 국경일이 있지만, 세계인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기념할 날은 아직 없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우리 인류는 아직 민족, 국가, 종교를 떠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경축하는 날이 없다. 지구촌 모든 촌민(村民)이, 글로벌 시대 모든 지구시민(global citizen), 아름다운 지구별에 사는 모든 별(星)사람들이(星民) 국가와 민족과 종교의 다름을 떠나 진심으로 함께 지킬 기념일이요 명절이요 축일(祝日)이 없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우애롭고 평화롭게 살기를 다짐하고 (비록 아직 미약하지만) 국제기구를 만든, 인류의 집단 지성이 꽃 피운 1945년 10월 24일이 그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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