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이상이 생긴 것이 감지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께였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던 이 배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 인근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다 기울더니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을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무경험 조타수에게 키를 맡기고 잠을 자던 이 배 선장은 9시 45분 침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부랴부랴 배를 빠져나왔다. 이 때 탈출하라는 방송만 했더라도 승객들은 전원 구조될 수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 후 30분 뒤 갑판은 물에 잠겼고 사실상 상황은 종료됐다. 가라앉는 배 안으로 뛰어 들어가 승객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배가 가라앉은 후에도 해경이나 선박 소유 회사 측은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이날 오전까지도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은 모두 구조됐다고 근거 없는 소문만 방송을 타고 요란히 퍼지고 있었다. 이것이 무려 294명이 죽고 10명이 실종된 대형 사고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그 한 참 뒤 일이다.
이 사고의 전모가 드러나자 온 국민은 충격과 애도를 금치 못했다. 피지도 못하고 진 어린 학생들의 영혼과 이들을 잃은 학부모를 위로하는 국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화문에 천막이 세워지고 유족 주변에 광우병과 한미 FTA, 천안함 등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괴담을 퍼뜨리던 세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족이 정한 인사가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고 세월호 일부 유족들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여야가 유족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한 합의안을 들고 설득했지만 이들은 끝내 거부했다. 여성 야당 대표가 이들을 만나 무릎까지 꿇어가며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유족 편을 들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 것은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진 ‘유민 아빠’ 김영오가 사실은 이혼 10년 동안 자식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활쏘기를 즐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가 청와대 앞까지 찾아가 여경들은 “개새끼”, 박근혜는 “안에 있는 년”이라고 외치는 동영상이 공개된 것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정떨어지게 한 것은 유족 대표들의 대리 운전기사 폭행이다. 이들은 새정치 민주연합의 김현 의원과 밤늦게 술을 마시다 택시기사를 부른 후 30분이나 그를 기다리게 했다. 택시 기사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김현은 국회의원 명함을 내밀었고 이들은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며 택시기사를 집단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말리던 행인까지 같이 때렸다. 그리고는 다음날 잘못을 시인하고 집단 사퇴했으나 아직까지 쌍방폭행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러 명이 단체로 택시기사 한 명을 폭행하는 과정에서 가해자 측이 맞았다면 이는 택시 기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여기서 이들보다 가관인 것은 운동권 출신 김현 의원의 태도다. 자기 때문에 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 현장에 줄곧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자신은 폭행을 목격한 바 없다고 우기고 있다. 눈 뜬 장님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뻔히 달린 눈으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지 못하면서 국회에서 일은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보다 못한 같은 당의 조경태 의원이 김현의 출당을 요구하자 역시 운동권 출신인 정청래 의원은 오히려 조경태의 출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잘 돌아가는 집안이다.
여야는 지난 주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고 일부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다섯 달 동안 꽉 막혔던 정국은 숨통을 트고 개점휴업 상태이던 국회도 정상화되게 됐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김현 의원 덕이다. 그가 유가족들이 택시 기사를 집단 폭행해 유가족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유가족 서슬에 질린 새정치는 여당과의 합의안을 법제화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못난 인간들이 역사를 움직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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