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학원에 다니는 둘째 녀석이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고민 내용 모두를 알지도 못 하지만 사실 제대로 조언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어 답답하다.
둘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워낙 어렵게 가르쳐 물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12학년 때 자신에게 왜 대학입학 추천서를 요청하지 않느냐고 물어 오셨다고 한다. 그 물음에 물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래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뜻밖의 선생님의 후한 평가에 둘째는 자신감을 얻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물리학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박사과정 첫 해에는 이수해야 할 과목 수강에 집중하지만 첫 해를 마치면 논문 준비를 위한 과제를 정해 연구에 들어간다. 둘째도 그러기 위해 여러 교수님들을 만나 다양한 연구과제와 교수님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물리학은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의대 진학으로 방향 전환도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들의 생활 모습도 살펴 보고, 의대에 다니는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며, 의학계의 전체적 추세도 나름대로 따져 보았단다. 또한 먼저 일을 몇 년 하고 비지니스 스쿨에 가는 것도 고려해 보았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통한 학문적 훈련과 학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잇점을 실용적 기술 취득 기회와 견주어 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한 학기와 여름방학 동안의 방황을 거쳐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채 물리학으로 잠정적이나마 다시 돌아와 있다. 고에너지에 관련된 프로젝트에 막 합류해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자신이 이 분야를 좋아할런지는 일단 두고 보겠다고 했다.
둘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나 자신이 비슷한 고민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대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는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3년이나 공부했고 성적도 괜찮았다는 이유로 화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학기만에 동아시아학과로 전공을 바꾸었다. 중국에 대해 중점적으로 공부해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후 외교관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조국에 돌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거창한(?) 꿈까지 꾸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려고 휴학을 하고 대만에 1년간 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대만에서 돌아와 4학년으로 복학한 후 진로 문제를 놓고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신학이 떠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님의 한 마디로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목사님은 나에게 그냥 평신도로 남아 있는게 더 좋겠다고 하셨다. 즉, 목회자로서의 자질 부족이라는 말씀을 에둘러서 하신 것이다. 정말 맞는 말씀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법대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미국에 오지 않고 한국에서 계속 있었다면 법대를 지망했었을 것이라는 게 나름의 변명 겸 이유가 되었다. 법대를 마치고 처음 10년간은 변호사 업무에만 매달렸다. 그 후 20년간은 변호사 업무와 공직생활을 겸했다. 16년은 교육위원, 4년은 카운티 기획위원으로 말이다.
내 나름대로도 이렇게 전공 변경을 포함해 여러가지 다른 길을 모색했던 과거의 경험과 그 동안 해 왔던 일들을 생각해 볼 때 둘째 애가 고민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어느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요즈음 미국인들의 일생동안 커리어를 변경하는 횟수가 보통 5-7번 정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평균 삼분의 일 정도가 직장을 바꾼다고 한다. 나이가 42세 되면 이미 10번 정도 다른 직장에서 일 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진로 고민은 당연하고 변경도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부모이기 때문인지 아들이 고민하는 모습이 안스럽다. 그 녀석의 마음에 큰 부담이 안 되면서 모든 것이 수월하게 풀어지기만을 바란다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욕심일까? 어려운 결정들을 놓고 고민하는 둘째에게 내가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최선인지 파악이 어려운 것이 나의 고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