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한 친구가 당시 신문사 기자로 있던 나를 찾아와 한 숨을 쉬며 하소연을 했다. 미국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 여권수속절차를 받던 중 이른바 연좌제(連坐制)라는 암초에 걸려 유학을 포기 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연이다. 친구의 아버지가 6.25때 월북했다는 기록이 신원조회 중에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아버지가 월북이 아니라 납북되었다는 사실을 당시 증인들을 통해 입증했지만 수사당국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잘못된 기록을 고치는데 1년 이상이 걸렸으며 친구는 결국 2년 후에야 입학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친구는 미국에 살면서 조국에 대한 쓴 뿌리를 가시지 못했다.
연좌제는 죄인의 죄를 본인뿐 아니라 가족·친지들에게도 함께 묻는 제도로 이조 때 주로 시행되었다. 국가 반역 행위 또는 왕가나 체제에 도전한 행위를 한 자들을 대부분 연좌제로 처벌하였는데, 그 죄를 본인의 자녀·부모나 형제는 물론 삼촌·사촌이나 그 밖의 친족에게까지 연좌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연좌제는 1894년(조선 고종 31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으나 1980년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의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연좌제 금지’ 조항이 삽입되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연좌제가 계속되었다. 월북·납북자 가족들이 1975년 제정된 사회안전법에 의한 ‘요시찰 카드’와 동태 조사를 통해 사찰당국의 감시를 받아왔다. 지금도 군 장교등 특수직 임용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에 따른 신원조회 등을 통해 연좌제 성격의 제한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친일파 연좌제의 부활’을 놓고 여론이 비등하다. 지난 5일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가 신임 KBS 이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불거진 논란이다. 일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창립발기인으로 친일 행위를 했다”며 이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여성 최초로 러시아 대사에 임명되었을 때는 이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었다. 누가 봐도 이들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며 정치적이다. 더구나 항일운동을 한 이 이사장의 외조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연좌제는 보수·진보 진영 간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때 양측이 아전인수 격으로 동네북처럼 이용하고 있다. 보수진영은 ‘빨갱이’라는 무기로, 진보진영은 ‘친일파’라는 무기로 ‘신 연좌제’를 사용하여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사들을 희생재물로 만들었는가?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장인의 남로당 활동 경력 때문에, 2004년 총선 당시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친형의 월북의혹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자 TV토론회에서 일본군 장교였던 아버지 때문에,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미국에서 ‘미국식 연좌제’로 인해 홍역을 치른 사람가운데 대표적인 인사가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가 생각한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그의 종교에 대해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생겼다. 오바마의 친부와 계부, 그리고 케냐에서 살고 있는 이복형제들도 무슬림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중간이름(middle name)은 무슬림의 이름인 후세인(Hussein)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종교와 상관없이 할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카고에서 대학교수와 인권변호사로 있을 때 개신교 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했으며 대통령 취임식에서 링컨의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서약을 했다. 그리고 그는 재임동안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고백을 미국 시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령 그의 친척 가운데 무슬림이 있다하더라도 오바마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히 여기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우리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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