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고등학교 운동시합을 보러간다. 모든 종목은 아니지만 가을이면 주로 풋볼 그리고 겨울에는 농구장을 찾는다. 봄에는 틈나는대로 축구, 래크로스, 야구 경기들을 관전한다. 이외에 레슬링 토너먼트나 ‘쥬빌리’라고 불리는 학년 말 버지니아 주 전체 운동축제에도 여러해 참석해 왔다.
나는 운동 자체는 잘 못한다. 그런데 시합을 보는 것만큼은 다른 사람에 별로 뒤지지 않는다. 내가 교육위원이기 때문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대신 아마도 내가 40년 전 미국으로 이민왔을 때 운동시합 구경을 통해 미국인 친구들과 사귈 수 있었고 미국 문화를 배우기 시작해서인지 모른다. 요즈음과 달리 40년전에 내가 한국에서 공부했던 영어 수준이란 정말 보잘 것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 이민왔을 때 당연히 학교 공부나 처음 만나는 급우들과의 어울림이 쉽지 않았다.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빨리 배우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본토박이 급우들과의 사귐이 중요했다. 그런데 그것을 도와준 것이 그들과 함께 운동시합을 관전하는 것이었다. 경기의 규칙이나 흐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영어도 눈으로 시합을 보며 하니까 이해가 빨랐다. 그리고 내가 영어로 질문을 하기에도 눈 앞에 벌쳐진 시합으로 인해 편했고 상대방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영어 구사에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또한 같은 팀을 응원하면서 서로 한 편이라는 동지애도 생겨서 그 친구들과 더욱 가까와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교통편을 제공해 주고 잘 못 알아 듣는 나를 위해 간단한 말도 귀찮은 내색없이 여러차례 반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때 친구들의 배려에 감사한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센터빌 고등학교에서 열렸던 풋볼시합에 갔었다. 센터빌 고등학교의 게임은 작년에도 여러 번 보았다. 버지니아 주 챔피언 결승전에 올랐을 때는 게임이 열렸던 버지니아 주립대학에 다녀오기도 했다. 센터빌 고교 팀은 올 해 시즌 시작 때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의해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랭크되었다. 그리고 시즌 개막전을 두 번째 강팀으로 여겨졌던 곤자가 (Gonzaga) 고교와 하게 되었고 그 게임이 ESPNU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던 것이다.
TV를 통한 전국적 소개는 학교나 팀으로서 큰 영예이다. 결과적으로는 센터빌이 31대 14로 패했다. 워싱턴 디씨에 소재한 사립학교인 곤자가 고교 팀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우세했다. 그런데 그 학교는 장학금을 주고 우수한 풋볼 선수들을 미국 전체에서 스카우트 할 수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공립고교와 비교하는 것은 사실 공평하진 않다. 이미 그 학교에는 풋볼로 정평이 나 있는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기로 내정되어 있는 선수들이 여럿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날 게임에 참석한 관중이 자그만치 7천5백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센터빌 고교 풋볼 경기장이 수용할 수 있는 관중 수가 최고 7천명인데 차고 넘쳤던 것이다. 센터빌 고교 쪽에 약 5천명 그리고 상대방 쪽에 그 절반 정도가 왔다. 비단 두 학교 학생들과 선수들, 가족뿐만 아니라 센터빌 지역의 큰 축제로써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참석했다. 내가 운동 시합 구경을 갈 때 종종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그런 분위기이다. 운동 시합이 단지 두 학교 팀 사이의 겨룸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묶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더라도 이웃 학생이 선수로 뛰기 때문에, 혹은 그냥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학교 팀의 시합이니 응원해주러 가는 주민들도 상당히 많은 것이다.
평소에 중고등학교 자녀들과의 공통 관심 화제를 찾는 것이 힘든 부모님이 계시다면 이런 게임에 같이 가보기를 적극 권한다. 같이 가서 잘 모르는 규칙이 있으면 자녀들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학교들 사이의 경쟁 관계도 배우기를 바란다. 자녀들과 좋은 추억거리도 될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 분위기도 한 번 엿볼 수 있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이 또한 우리 모두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해봄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 저녁에는 전통적으로 라이벌인 레이크브래덕 고교와 로빈슨 고교 사이의 풋볼 경기를 보러 레이크브래덕 고교로 달려 갈 예정이다. 이 게임도 경기장 양쪽 스탠드가 차고 넘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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