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법 무죄·국정원법은 유죄…법원 판단 이유는
대선·정치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후 취재진을 피해 법원을 나서던 중 인터뷰를 요구하는 기자들과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의 핵심 쟁점은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이 정치·선거 개입에 해당하는지와 이런 활동이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여부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판결선고에서 사이버 활동이 국정원 고유 활동을 벗어난 정치개입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선거개입으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당선 혹은 낙선시킬 목적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주요 판단 근거였다.
◇ 국정원 댓글은 정치관여 =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은 정치관여 의도가 명백하다고 봤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이슈 및 논지를 토대로 작성한 글에서 국정 성과는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비방할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방한계선(NLL) 관련 글을 보면 단순히 NLL의 합법성과 당위성에 대한 언급을 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고, 햇볕정책을 계승한 정당을 비판하는 글까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정치관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올린 글 2천125건과 찬반클릭 1천214건 전부가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다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트위터 활동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특정한 1천157개의 15% 수준인 175개 계정에 대해서만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를 사용해 작성된 것으로 공소 제기된 트윗과 리트윗글 78만여건 중 11만3천621건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국정원 직원의 트윗글 5만5천여건을 공소사실에 추가한 뒤 공소장 변경을 통해 트윗글을 121만건까지 늘렸다가 증거능력 문제로 78만여건으로 축소한 바 있다.
◇ 정치관여 행위는 원세훈 지시에 의한 것 = 재판부는 심리전단의 이런 정치관여 활동이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은 매달 국정원 간부 30∼40명이 참석하는 전 부서장 회의를 열고 각종 지시사항을 시달했다. 그는 회의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비판했으며, 4대강 사업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한미FTA 체결, 세종시 사업 등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홍보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지시사항은 각 실국장 등 계통을 밟아 원장님 지시·강조말씀 형태로 국정원 내부망에 게시·공유됐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 등을 토대로 원 전 원장의 발언이 그 자체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업무 지시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심리전단 직원들이 매일 이슈 및 논지를 시달받아 업무용 노트북으로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종명 국정원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도 원 전 원장의 지휘를 전달하고, 그 이행 결과를 보고하는 방법으로 범행에 가담했음을 판단했다.
◇ 선거법은 무죄 이유는 = 정치와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공직선거법 85조와 국정원법 9조2항1호다.
선거법 85조는 공무원 등이 직무와 관련하거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국정원법 9조2항1호는 국정원 직원이 그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찬양·비방하는 내용의 의견이나 사실을 유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들 조항에 비춰보면 심리전단의 활동이 정치관여에는 해당하더라도 특정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목적이 없었다면 선거법 위반으로까지는 처벌할 수 없다.
대법원 판례도 어떤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보려면 당선이나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성’과 ‘능동성’, ‘계획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요 증거로 제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이슈 및 논지 어디에서도 대선 개입을 지시한 내용은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선에 임박한 시점에도 종북세력을 경계하고 대응하라는 지시만 했고, 특히 11월에는 선거에 불필요하게 연루되지 않게 각별히 유의해달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의 댓글이나 트위터 활동이 대선 후보 윤곽도 드러나기 전부터 계속 이뤄져 왔고, 트위터 활동의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던 점도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처럼 기존에 계속 이뤄져 온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 선거운동으로 전환된 것이라면 선거운동의 ‘계획성’이나 ‘능동성’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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