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나 흉용하고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내가 칼럼에 다루고자 생각했던 문제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 관한 것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696쪽에 달한다는 경제이론서이면서도 불란서에서 작년에 발간되었고 미국에는 3월 달에 소개된 이후에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는 그 책이 9월이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다니까 급히 쓸 수밖에.
내게 그 책의 존재를 몇 달 전에 알려준 사람은 대학 동창인 박영철 교수였다. 세계은행 등의 경력을 거친 경제학자로 경제 발전과 빈부 문제 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박 교수는 피케티의 역저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비교할 정도라고 칭찬을 거듭한다. 책값이 39.95달러여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침침해지는 노안에 읽을거리들이 적지 않아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그 책을 둘러싼 논란거리에 대한 기사는 몇 개 읽었다.
우선 피케티 교수의 천재성이 놀랍다. 1971년생인 그는 19세 때 그 어렵다는 파리 고등사범대학에서 수학 석사를 받았고 22세 때에는 경제학 박사를 마친 다음 MIT 조교수로 잠간 있다 불란서로 귀국하여 경제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수많은 논문들에 더해 주로 불어로 쓰여진 저서가 최근의 문제작을 포함하여 11권이나 된다는 데야 너무나 놀라운 업적이라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아마도 직업적인 질투감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르는 한 도서관 학자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서가에 꽂혀 있으면서도 제일 읽지 않는 책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최신 회고록과 이 책을 꼽았다. ‘21세기 자본론’은 미국, 영국, 스웨덴 그리고 불란서 4개국의 300년간의 부 축적 상태를 연구 집대성했다는 것이니 젊은 학자로서 여간 야심만만한 노력의 결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 책의 요점은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증권 같은 자산이 경제 성장 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가 자연적으로 심각한 불공평 사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 같은 경향이 세계 양차대전으로 한동안 주춤했다가 다시 두드러져 1차대전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는데 빈부의 격차가 그처럼 벌어지는 것은 나쁜 현상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부에 대한 세금과 같은 급진적인 정책을 통해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게 피케티 교수의 주장이다.
피케티는 부자들에 대한 어떤 세율을 제창하는가?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 수입에 80%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20만 달러의 수입부터 시작해서 50% 내지 60%의 세율을 적용해야 된다는 내용도 들어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최상급 부자들의 부에 대해서는 매년 10%의 부유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과 그 밑의 부자들에게는 한 번 20%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제안도 담고 있으니까 자본주의의 아성이랄 수 있는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스와 뉴욕의 월스트리트 저널만이 아니라 친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비난도 대단하다.
물론 세계 인구 중 약 14억이 하루에 1.25달러로 살고 약 35억이 2.50달러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페라리 중고차를 3천900만 달러에 구입하거나 수 억 달러대의 자가용 비행기 구입 등 현시적인 소비의 전형이랄 수 있는 세습 부호나 후계자들의 행태가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워렌 버펫이나 빌 게이츠처럼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도 있고 보면 빈부의 격차 심화와 그 해결책이 지당한 관심사다. 그러나 피케티 교수의 책이 최고 부자들인 1%의 문제만 강조했지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는 빈약하다는 지적대로 그의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탄생될 가능성은 연목구어(緣木求魚)격이라는 게 맞는 말 같다.
완전한 사회정의나 경제활동 과실의 공평한 분배는 불완전한 인간사회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가운데 희년(喜年) 제도가 있었다. 빚을 져서 종이 되었거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았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고 전답도 되찾아 새출발을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하나님 계명을 어겼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을 못벗어 났다. 완전한 공의와 평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기도문대로 나라(왕국)의 권능을 잡으시고 지상을 통치하실 때나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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