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며 보고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다. 요즘 2주 동안 미 언론을 달구고 있는 퍼거슨 시티에서의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청년 사망사건을 보면서, 한 가지 소수민족으로서 부러운 것이 있다면, 흑인들의 공통된 그리고 일원화된 프로테스트 이다. 그들이 LA 로드니 킹 사건, 플로리다에서의 트레이번 마틴 사건 그리고 이번 퍼거슨 사건을 대하는 공통점은 흑인들의 ‘묻지마 결속력‘이다. 흑인들은 배우고 못 배우고가 없고, 잘살고 못살고도 없다. 무조건 일치단결이다. 이러니 다른 어느 누구하나 입도 뻥긋 하기 힘들다.
물론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백그라운드가 다른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여하튼, 부럽다. 유대인들은 돈이라도 물씬 쓴다. 유대인들은 모든 입김이 있을만한 단체에 모두 개입되어있다. 그들의 돈과 커넥션(한국말로 빽)이 무서워 함부로 못 다룬다. 그들도 그 점 십분 알고 활용한다. 그러나 유대인도 흑인들 앞에서는 약해진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흑인하나 다치면 다른 소수민족들은 몸을 사려야한다. 이번 역시, 백인경찰이 흑인을 총을 쏴 죽였는데(알고 보니 강도범) 경찰관은 신변보호를 받고 있고, 한인, 인도인 등 소수 이민자들의 가게들은 폭도로 변한 흑인들에게 무차별 강도와 도둑질을 당해야했다.
주류언론들은 혹시나 편파적 보도라는 파편에 맞지 않을까, 상인들의 피해를 보도조차 기피하는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경찰이 들이대는 총 앞에서도 시위하는 흑인들의 용기 와 단결력이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이성을 잃은 듯 한 행동에 가슴속 밀려오는 저항을 느끼기도 한다.
이쯤에서 우리를 돌아보자. 작년 미 의회의사당이 지척에 보이는 워싱턴DC의 H 스트리트에서 한 한인가정 어머니(임해순씨)가 새벽길, 델리 가게 문을 열다 강도에 의하여 차디찬 가게 바닥에 피를 흘리며 고귀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이 먼 이국땅에 74년 도미하여 열심히 살아가다 그렇게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으며 마지막으로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그 다음날 있었던 촛불시위에 동족애를 그렇게도 부르짖는 우리 한인들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전, 또 다시 DC 노스 이스트에서 흑인 강도들에 의해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주민들에게 온정을 베풀던 한인이 무차별 구타당하여 또 다시 사망하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사건이후 DC 4관구 경찰서에서 경찰국장 주재 아래 주민, 상인, 소수계를 초청하여 사건진행을 설명하는 타운미팅이 있었다. 뉴스 브리핑이 지역 언론에 방송되었는데, 이번 역시 한인들의 참석과 협력은 참으로 부끄러울 정도였다. 경찰국 담당자나 시공무원들에게 우리들의 무관심을 그야말로 무어라 설명해야할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매번 정치인들, 정부 관계자들에게 한인 세탁소, 그로서리, 리커스토어가 얼마나 많은지 입이 마르도록 떠벌리던 사람으로서 이 무관심과 나몰라하는 행동은 비참함을 지나 울분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나마, 이민 초기 못살던 1970, 80년대에는 한인살인 사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언론사나 한인회에서 도네이션을 받아 전달하던 미풍이나마 있었는데 그마저 사라졌다.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coward(카워드)는 겁쟁이, 비겁자를 뜻한다. 우리는, 아니 나부터 모두 카워드 이다. 옆집에서 강도로 죽어나가도 내 가게만 지키면 되고, 나만 안 당하면 되고, 가게 가격만 안 떨어지면 된다. 한인끼리는 소리 높여 싸우면서도, 미국인 앞에서는 꽁지를 내리는 지극히 보편스런 카워드 들이다. 그것부터 인정하자. 내 스스로 용기 있고 정당하다고 믿는 이상 우리는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우리 모든 한인들은 소수민족이란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두 잘 살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비굴하게, 비겁하게 살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들의 선각자이신 안창호, 서재필 선생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며 유언이셨다. 물론, 사건마다 흑인들처럼 우리 모두 길로 뛰어나가자는 말은 아니다, 현실이 어려운데 유대인들처럼 주머니를 털어 도네이션을 많이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을 직시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 말하고, 부름에 동참할 용기는 지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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