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안식년을 맞아 1년간 미국에 계시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어느 대학교수와 한국의 대학입시제도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4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온 나로서는 그 동안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가 수도 없이 많이 바뀌어 미국 교육자들에게 현 제도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수시와 정시, 수시 1차, 2차와 정시의 가나다 군 그리고 수능과 내신 성적의 고려 비율 등 혼동스러운 게 상당하다.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는 진학 담당 선생님들도 때로는 미처 제대로 못 챙길 만큼 자주 있어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초중고 교육은 모든 것이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불행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오래동안 많은 정책 입안자들과 교육자들이 노력해 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도 못 고친단다. 바로 거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표 잃는 일과 기득권층으로부터의 저항이 무서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없는 경우를 최근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도 보았다. 카운티 기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가 ‘Residential Studio’라고 불리는 원룸아파트 형태의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도시계획안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무기 연기해 버린 것이다. 커뮤니티 차원에서 좀 더 많은 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 외에는 추후 심의 날짜나 구체적 방향 제시 조차 없이 말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서의 주택가격은 뉴욕시나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비할 수는 없지만 미국내에서 상당히 높다. 임대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나 낮은 임금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페어팩스에서의 거주가 녹녹치 않다. 다행히 부모나 가까운 친척과 같이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주택 문제를 인지한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는 담당자에게 해결책의 일환으로 500 평방피트 이하의 원룸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도시계획안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주민 공청회를 작년 11월에 갖도록 했었다. 그런데 도시계획안에 대해 일단 심의를 거치는 기획위원회가 공청회를 연기하고 대신 담당 소위원회를 구성해 좀 더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연구를 하도록 하자고 수퍼바이저위원회에 제시했고 수퍼바이저위원회는 이를 받아 들였다. 소위원회는 그 후 15번 이상 주민들과의 대화 모임과 7번의 실무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그래도 이 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은 카운티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로 시급히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주민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반대를 너무 의식해 그냥 결론 없이 넘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원룸 형태의 주택이 들어설 경우 저소득층 주민이 유입되는 게 아니냐는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할 수 있음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야기될 수 있는 주차 문제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며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수퍼바이저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선거 때 표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페어팩스 카운티 전체의 균형 잡힌 발전을 생각한다면 가구 소득 10만불 이상의 주민들 뿐 아니라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어렵게 생활하는 저소득층 주민들도 같이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는 저소득계층과 더불어 같이 살기를 포기한 처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카운티 기획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기획위원들을 임명하는 수퍼바이저들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현명치 못한 처사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과 해결책을 앞에 두고서 그냥 눈을 감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떳떳하지 못하다. 고양이 목에는 아무도 방울을 못 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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