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한 미국민의 반대는 강경하다. 지난 몇 년 약화된 적이 없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산물인 이라크 내전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7월 퓨센터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가 “미국은 이라크 위기에 대응할 책임이 없다”고 답했다. 아마 여론조사 전화가 백악관에도 갔더라면 그곳 주인 버락 오바마의 응답 역시 55%에 속했을 것이다.
지난 7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이라크 수니파 반군에 대한 공습승인 스피치에는 10년 전쟁을 간신히 마무리한지 3년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군사행동 재개를 명령해야 하는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 언론들이 ‘망설이는 전사(reluctant warrior)’라고 이름붙인 오바마는 ‘제한적 목적’을 위한 ‘선별적 공습’임을 거듭 강조하며 두 가지를 약속했다 : 공습의 목표는 대량학살에 처한 난민 구조와 현지에 체류 중인 미 국민 보호다,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 이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우선 제한적인 군사행동으로는 제한적인 효과밖에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작전 1주일째로 접어들며 수 십 차례 공습을 감행했으나 상황 반전의 기미는 아직 없다. “반군들의 작전속도를 늦출 수는 있었지만 전력약화에는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고 합동참모본부 작전국장 윌리엄 메이빌 중장은 기자회견에서 인정했다.
지난 몇 달 이라크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수니파 반군 ISIS(Islamic States in Iraq and Syria)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테러조직으로 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ISIS를 알카에다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한다.
팔루자를 장악하고 바그다드를 공격하며 제압한 이라크 정부군으로부터 탈취한 미국의 최신무기로 무장한데다 누리 알말리키 시아파 이라크총리의 종파차별 통치와 부패에 염증을 느껴 탈영한 정부군 장교들의 지휘를 받고 있어 전투력이 탄탄하다. 점거한 유전의 오일머니로 자금도 풍부하다. 오사마 빈라덴도 외면했을 정도로 잔혹하고 야만적인 극단주의이며 종교적 신념에 생명을 걸고 성전에 나선 ‘전사들’의 군대로 미국과 유럽의 여권을 소지한 전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주 오바마의 공습승인 발표 후 워싱턴의 반응은 어떤 사안에나 늘 그랬듯이 양분되었었다. 강경 매파들은 제한적 공습으로는 성과를 못 낸다면서 불만을 표했고 온건파들은 제한적 공습이 전면적으로 확대될까 불안으로 긴장했다. 그래도 민주·공화 양당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허핑턴 포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인도주의적’ 목표를 위한 ISIS에 대한 선별적 공습엔 58%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지난주까진 매파도 언급을 자제하던 ‘지상군 투입’의 필요성이 이번 주 접어들며 제기되기 시작했다. 공습만으로는 ISIS의 기세를 잠시 누르고 진격을 일시 중단시킬 수는 있어도 반군의 패퇴는 지상군의 투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봄 오바마 대통령이 웨스트포인트 연설을 통해 밝힌 집권 후반기의 외교정책 ‘오바마 독트린’의 골자는 제한적 개입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중대한 미국의 국익이 위협받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시 오바마는 ‘중대한 국익’ 관련 제외사항으로 국제적 테러와 미 시민에 대한 위협,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언급했는데 바로 이 세 가지 모두가 현재 이라크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LA타임스의 도일 맥마너스는 지적한다.
사실 강경 매파가 아니더라도 이라크사태의 심각성과 미국의 소극적 대응을 우려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ISIS에 의한 위협은 추상적이 아니며 이라크에 국한된 것도 아니어서 그대로 방치할 경우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ISIS가 훈련시킨 테러리스트들이 우리 뒷마당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미국은 지금 이들과 대결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은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다.
이라크사태는 “궁극적으로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는 물론 모든 소수 종파와 민족을 아우르는 통합정부를 구성해 이라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적 해답이자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총리가 화합통치를 하며 군대를 재정비하여 반군을 제압해야할 통합정부의 실현이 아직 요원해 보인다는 데 있다.
지나치게 잔혹한 ISIS는 수니파 내에서도 다수의 호응을 받으며 오래 계속될 집단은 아니라고 는 하지만 스스로 붕괴하지도 않을 것이어서 무력으로 패배시켜야 하는데 이를 단행할 제대로 된 정부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이라크의 현실이며, 그 장기적 후유증의 위협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어서 쉽게 발을 뺄 수 없는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오바마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또 하나의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은 허용치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월스트릿저널은 이미 ‘제3차 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못 박고 있다. 이라크 종전을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몸은 지금쯤 휴양지에서 골프를 즐길지 몰라도 머릿속은 또 다시 ‘이라크 늪’으로 끌려들어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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