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이 다시 뜨거운 정치 화두로 떠올랐다. 논쟁의 핵심은 이민사회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민개혁’이 아니다. 나홀로 밀입국하는 아이들이 급증하면서 초래된 ‘국경 위기’ - 아무도 예상 못했던 이 복병이 워싱턴의 이민정치를 누구도 장담하기 힘든 불확실의 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인도주의와 국경안보가 부딪치는 찬반논란이 미 전국에서 격화되면서 ‘이민’은 어제 발표된 갤럽조사에서 경제를 제치고 미국인의 최대관심사로 등극했고 민주·공화 양당은 선거를 몇 달 앞두고 터진 이민문제의 새 국면을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분석하느라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민을 소수계 표밭 동원하는 캠페인 이슈로 삼으려던 민주당은 그 이해득실을 재평가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이민개혁 무산의 책임추궁에 몰렸던 공화당은 ‘허술한 국경’과 ‘밀입국 조장하는 오바마 이민정책’ 성토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님비현상 심한 국경도시에선 공화당 하원 후보를 앞세운 시위대가 초등학생들을 태운 캠프행 버스를 밀입국아동 이송버스로 오인해 피켓을 들고 막아서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백악관은 국경 위기 대처위한 37억 달러의 긴급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공화당이 앞장선 밀입국 아이들의 조속한 송환위한 이른바 ‘인도적 법안’이 작성되는 부산한 워싱턴에서 요즘 ‘이민개혁’은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금년 내 이민개혁은 무산되었으며 이번 위기로 장기적으로도 더 지연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의회에서의 논의 자체도 차기 대통령 취임 후인 2018년에 가서야 재개될 것이라고 외교관계위 에드 앨든 선임연구원은 전망한다.
이민개혁에 대한 희망의 끈을 모두가 다 놓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이민 노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재계에선 다각도로 의회의 개혁안 처리를 여전히 촉구하고 있다.
지난 11일엔 미국의 대표적 억만장자 3명, 워렌 버핏, 빌 게이츠, 셸던 아델슨이 뉴욕타임스에 실린 공동기고문을 통해 이민개혁 교착상태를 빚고 있는 의회를 강력비난하고 나섰다. 아델슨은 공화당, 버핏과 게이츠는 민주당의 큰손 기부가로 정치성향이 정 반대인 이들은 의견과 철학이 다른 자신들도 합리적 협력을 한다면서 대의 위한 타협보다 정치적 이해 따지기에 급급한 하원을 향해 “미국의 인도주의와 국익을 반영하는 이민개혁안을 통과시키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CEO 출신답게 봉급 값은 하라고 의원들을 다그쳤다 : “지금은 535명의 연방의원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3억1,800만 미국민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상기해야 할 때다”지난 9일은 미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각 업계협회 연합이 이민개혁안 의회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제정한 ‘행동의 날(Day of Action)’이었다. 워싱턴DC와 25개주 60개 선거구에서 각 업계 관계자들이 “개혁안 통과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14년째 추진해온 이민개혁의 입법화는 금년에도 절망적이다. 오바마의 행정명령만이 남았다. 그것이 오바마 당선과 민주당 압승의 2008년 대선이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민개혁의 초라한 현주소다.
지난 6월30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대통령이 하원의 이민개혁이 무산되었음을 공식화하며 “이 순간부터 나 혼자 할 수 있는 이민제도 개혁을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고 밝혔을 때 이민사회와 진보진영은 “오바마의 독립선언”이라며 일제히 응원을 보냈다.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행정명령 발동은 한계가 뚜렷한 권한이지만 상당수 기존 서류미비자들이 양지에서 당당히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구제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 추방유예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서류미비 청소년들의 부모와 미국태생 시민권 자녀들의 부모, 전과 없는 장기 체류자 등 수백만 서류미비자들이 “공포 없이 체류하고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추방유예의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추방유예 확대 명령에 대한 반발에 대비해야 하는 오바마는 로즈가든 연설 전 이민운동가들을 향해 “기대치를 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으나 이미 오래 참아온 이민사회의 실망과 분노는 비등점에 달해 있는 상태다. 8월말 발표될 오바마의 행정명령이 상징적 조처에 머물 경우 ‘11월 선거 기권’으로 맞서겠다는 경고마저 불사한다.
로즈가든의 ‘독립선언’ 무렵 밀입국 아동사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백악관은 여름을 지나면서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사태는 ‘국경 위기’로 불리며 계속 확대되고 이민개혁에 지지를 보내던 여론도 구멍 뚫린 국경 쪽으로 불안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국경 위기가 자칫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흔들지 모를 이민역풍을 우려하면서 오바마의 행보는 신중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이민사회의 보이스도 날로 높아진다 -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사회에 ‘추방사령관’으로 남기 원하는가”…백악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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