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본보 특별후원으로 열리고 있는 ‘조선미술대전’에 관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문의를 받고 있다. 그만큼 화제의 전시이고 관심이 높다는 뜻이니 더 이상 반가울 수가 없다. 이미 작년서부터 전시회 예고기사를 포함해 오프닝 행사, 전시 리뷰,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등 수많은 기사를 써온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몇가지 관전 포인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보물 한 점만 보고와도 좋다
‘조선미술대전’에는 150여점의 문화재가 전시돼있다. 이중에는 국보 166호인 ‘백자철화매죽문호’를 비롯해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과 김영나 국립박물관장이 모두 최고라고 칭송한 ‘백자 철화끈화병’(보물 1060호)이 있고, LA타임스가 극찬에 극찬을 보낸 백자 ‘달항아리’(보물 1437호)도 있다. 또 프랑스에서 3년전 돌려받은 외규장각 의궤 중 ‘현경혜빈양례도감의궤’, 비운의 사도세자가 왕세자로 책봉됐던 글을 대나무에 새긴 ‘장조죽책’,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 해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보물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이중 한가지만 제대로 본다 해도 황홀한 전시가 될 것이다.
2. 화려한 전시를 기대하지 말라
조선미술의 특징은 절제되고 겸손하며 품위있다는 것이다. 불교가 국교이던 신라와 고려시대와는 달리 유교정책을 썼던 조선시대는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같은 시대 서양의 바로크나 로코코 미술, 화려한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와는 달리 절제미의 진수를 보여주는 조선백자에 서양인들이 홀딱 반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더 장식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더 그릴 수 있는데 비워두는 것, 더 색을 쓰고 싶은데 멈추는 것, 바로 그것이 조선문화의 위대함이다. 미니멀리즘? 별거 아니다. 우린 벌써 500년전부터 했던 것이다.
3. 시간을 갖고 여러번 본다
바로 그런 겸손한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 미술은 천천히, 조금씩, 깊게 다가온다. 한눈에 탄성을 자아내는 서양미술과는 급이 다르다. 이런 전시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느긋함과 여유다. 먼저 전시장 전체를 돌아보면서 분위기를 익힌 후 하나씩 찬찬히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5개 주제로 나뉜 전시실마다 초입에 설명이 써있다. 영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시간을 갖고 읽어보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좋은 것은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 실컷 들여다보시라.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에 올 때 전에 배운거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확인이 아니라 모험이고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4. 자녀를 억지로 보게 하지 말라
아이들 데려오는 부모와 할머니들이 많을 것이다. 2세에게 뿌리 교육시키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박물관에 오는 젊은 부모들에게 보내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면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뭔가 배우게 하려고 억지로 보게 하거나 자꾸 작품 앞에 끌어다 놓으면 애들은 미술관가기 자체를 싫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애들 닦달하지 말고 엄마 자신이나 잘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5. 우리를 한번 돌아보자
버지니아 문 라크마 한국미술 큐레이터는 “이 전시는 단지 조선 미술품을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현대 한국의 뿌리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말했다. 그런데 전시를 보고나면 지금의 한국?한국인·한국사회는 조선시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전혀 다른 국가이며 개인과 사회로 변해있음을 느끼게 된다.
품위와 절제와 겸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엄격한 윤리관에 따라 평생 지조있고 청빈한 삶을 추구했던 사대부 정신은 간데없어서, 우리는 지금 부정부패 없는 총리나 장관 한사람을 뽑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 세계 어느 곳에서 마주쳐도 제일 시끄럽고 무질서하며 온통 알록달록 원색의 등산복 패션으로 눈길을 끄는 요란한 민족, 언제 우리나라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고 동방예의지국이며 백의민족이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한탄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분명히 거기서 왔다는 사실이다. 그 뿌리와 긍지를 잊어서는 안될 뿐더러, 다시 그런 품격과 자존심을 가진 민족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하는 다짐과 소망, 그것이 ‘조선미술대전’이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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