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의 오바마 대통령 제소 위협은 그저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기세다. 독립기념일 연휴를 지내고 돌아온 의회 주변에서 하원 공화당의 소송대비 일정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
다음 주부터 준비 작업에 돌입, 전문패널을 구성해 소송의 법적 근거를 구체화 하고 그 다음 주엔 의사운영위가 하원의 소송제기 권한을 허가하는 결의안을 작성해 통과시킨 후 여름 휴회 직전인 7월 마지막 주에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공화당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될 것이다.
“왜 우리는 지금 오바마 대통령을 제소해야 하는가”라는 CNN기고문을 통해 오바마가 “자신이 지키겠다고 선서한 법을 지키지 않고 행정명령을 통하거나 멋대로 법을 제·개정하며 미국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들을 피해왔다”고 주장하는 베이너의 소송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헬스케어, 에너지 규제, 외교정책과 교육 등의 현안에 대해 법을 충실하게 집행하지 않았다” - 어떤 법인지도 지적하지 않았고 ‘충실하게’는 상당히 주관적 잣대여서 이대로는 소송에 앞서 논쟁의 쟁점조차 되기 힘들다.
둘째, “지난 5년간 너무 자주…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있다” -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의 “전례 없는 행정명령 남용”을 합창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부터 발동해온 역대 대통령의 잦은 행정명령은 전례가 없기는커녕 넘쳐난다.
경제 대공황과 2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만12년 넘게 재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단연 1위로 무려 3,522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그밖에도 우드로 윌슨을 비롯해 1,000건이 넘는 대통령도 3명이나 되고 아이젠하워 484건, 닉슨 346건, 레이건 381건, 부시 291건 등 공화당 대통령들도 만만치 않게 행정명령을 애용했다.
오바마는? 취임 5년6개월에 접어든 현재 182건에 머물러 있다. 객관적 평가의 근거가 될 숫자상으로 본다면 ‘남용’과는 거리가 멀다.
연방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행정명령도 물론 있었다. 1942년 2차대전 중 루즈벨트 대통령이 발동했던 10여만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행정명령은 당시 연방대법원에 의해 합헌판결을 받았으나 40년 후 번복되었으며, 1952년 한국전쟁 중 철강노조가 계획하는 대규모 파업이 전쟁수행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렸던 연방 상무부의 주요 철강회사 접수 명령은 같은 해 대법원의 판결로 무효화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철강회사 접수명령은 “의회의 고유권한인 입법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베이너의 소송도 오바마의 행정명령들이 의회의 입법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이길 전망은 현재로선 영 어둡다. 소송 기각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통령을 상대로 의원들이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꽤 있었다. 그러나 상원이나 하원, 입법기관 자체가 법집행 불충실을 이유로 대통령을 제소한 사례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원고의 ‘법적 자격’으로 지적된다. 소송은 원고가 피고에 의해 구체적인 ‘손상’을 당했을 경우에 성립된다. 피해를 당한 특정 원고가 법원에 제소할 자격을 갖게 되는데 법원이 원고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송은 기각 당한다. 정책에 관해 대통령을 제소했던 과거 의원들의 소송이 대부분 기각당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법원은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 대결에 개입하기를 극히 꺼려한다. 대통령의 월권행위 견제 같은 이슈에 대해선 의회가 기금을 중단하든지, 탄핵을 하든지 ‘법안 통과’라는 자체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법부의 시각이다.
베이너의 소송 추진에 대한 공화당 내 반대도 적지 않다. “소송은 너무 약하다, 탄핵을 추진하라”는 극우보수의 강경론도 있지만 “대통령의 월권은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긴 해도 성공확률이 희박한 소송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온건파의 신중론도 제기되었다.
오바마와 민주당은 “정치적 곡예”라고 일축한다. 11월 선거를 앞두고 반오바마 보수표밭의 비위를 맞추려는 선거용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정명령이 소송의 표적이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베이너가 기고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불법청소년 추방유예 명령은 히스패닉 표밭을 의식해 빠질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베이너는 9일 이민관련 행정명령도 소송에 포함시킬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공화당의 분노를 샀던 오바마케어 일부 시행변경, 발전소의 온실개스 배출량제한 명령, 동성결혼 재판에서 결혼보호법 옹호거부, 연방계약 업주에 대한 최저임금 인상명령 등이 거론된다. 가난한 근로자, 동성애자, 이민자, 그리고 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들로 여론의 지지도 높은 정책들인데…
현 113대 의회는 지난 회기를 제치고 사상 생산성이 가장 낮은 ‘아무 것도 안하는 의회(Do-Nothing-Congress)’로 기록될 것이다. 금년 말까지 실제로 입법에 할애할 수 있는 남은 기간은 한 달도 못되는데 이민개혁안을 비롯한 시급한 이슈는 대부분 외면한 채 하원은 세금만 낭비할 소송 준비에 열중할 작정인가 보다.
베이너에게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려고 애쓰는 대신 “제발 의장님 업무에나 충실 하시지요”라고 경고하고 싶은 유권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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