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란 남편이 노래나 주장을 하면 아내가 따른다는 의미로 부부의 화합하는 도리를 가리키는 한자성어이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따르는 것이지 남편이 아내를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남녀평등 사회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夫와 婦의 어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우기 미국에서는 말이다.
나는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 교사들 이직 통계를 가끔 살펴 본다. 그런데 남편의 직장 이동에 따라 사표를 내는 여자 교사들이 많이 있다. 연방정부가 위치한 워싱턴 지역에서는 남편을 따라 직장과 거주지를 옮기는 부인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것 같다. 남편 때문에 타 지역에 가서 새로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특히 자기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추구하는 경우 이에 지장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주 부인을 따라 남편이 직장을 옮기는 얘기 하나를 들었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25개 정도의 학교를 지휘 감독하는 자리에 있던 한 지역담당 교육감보 (Cluster Assistant Superintendent)의 얘기이다. 나하고는 몇 년 전 한국에 초청 받아 같이 다녀 오면서 친하게 된 사람이다. 그런데 부인이 직장을 타주로 옮겨가면서 이번에 교육감보 자리에서 사임했다. 부인을 좇아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육감보 이상의 고위간부 직원이 은퇴나 사임하는 경우 정기회의에서 정식으로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그리고 결의안 채택 시 해당 간부직원 뿐 아니라 가족들을 초청해 선물도 증정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덕담도 나눈다. 해당 간부직원에게 고별인사를 할 기회도 준다. 이 모든 것은 케이블 TV로 생중계 되는 공개적 행사이다.
그런데 당일 교육위원회에서 결의안 행사를 다 마치고 회의장을 나오면서 그 간부직원 부인이 울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자기 때문에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미안함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교육위원들과 교육감으로부터 치하 인사와 덕담을 듣는 순간 남편이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 내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미안함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이 간부 직원의 경우 부인 때문에 본인이 직장을 옮기는 것이 이 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14년 전 처음 페어팩스로 오기 전에는 타주에서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런데 부인이 페어팩스로 전근 발령이 나자 부인을 위해 본인도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새로 교장자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신 교감 자리로 낮추어 지원했다. 그 자리도 여러 학교의 면접을 거쳐 가까스로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또 다른 고등학교의 교감을 거쳐 고등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리고 교육감의 핵심 리더십 팀 멤버로 25개 정도의 학교를 책임지는 지역담당 교육감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페어팩스를 떠나 부인의 새 직장 근무지인 타주에 가서는 중학교 교장이 된다고 한다. 부인을 위해 또 다시 희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출중한 능력을 소지한 교육자이니 일단 교장에서 시작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그 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기회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씩이나 부인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 발전은 뒤로 해 준 이 사람의 아내 사랑은 여러모로 본 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비슷한 예로 페어팩스 카운티 역사상 첫 여성 교육감인 Garza 교육감이 작년에 이 곳에 올 때 남편이 자신의 직장을 포기하고 같이 온 경우가 있다. 덕분에 교육감의 남편은 최근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일년 동안 조용히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또한 나의 집 바로 옆에 살던 이웃 하나는 집안 일을 돌보던 부인이 직장에 복귀하고 자신이 3년간이나 대신 집안 일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 애들의 뒷 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모두 배움의 대상으로 놓고 생각해 보아야 할 좋은 사례들일 것이다.
부창부수에서 夫와 婦의 순서를 곱씹어 본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문 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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