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별 인터뷰 -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나 관장
▶ 절제되고 겸손하며 품위 있는 점이 매력, 분위기 느끼며 새로움 발견이 감상 포인트, 전세계 흩어진 문화재 환수에 많은 노력
29일 LA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개막되는 ‘조선미술대전’(Treasures from Korea: Arts and Culture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은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500년 유교문화가 남긴 품위와 절제의 미를 이처럼 단순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전시를 만나리라곤 사실 기대하지 못했다. 한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국보급 보물을 LA에서 직접 볼 수 있도록 150여점이나 대여해 준 국립중앙박물관(NMK)과 김영나(63) 관장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하게 되는 이유다. 이번 전시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LA를 방문한 김영나 관장을 인터뷰했다.
<글 정숙희·사진 김영재 기자>
△라크마에서 ‘조선미술대전’을 여는 소감과 기대가 어떻습니까?
▲이 전시는 지난해에 한국서 했던 ‘미국미술 300년’(Art Across America)의 교환전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 협력했던 필라델피아와 LA, 휴스턴의 세 뮤지엄에서 연속으로 열리게 되는데 LA가 제일 크고, 라크마는 해외 한국 미술의 중요한 거점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전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미술전을 NMK에서 열었습니까?
▲국립박물관에서는 고미술 전시만 한다는 생각은 옛날 얘기입니다.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후 박물관의 위상과 내용이 크게 달라졌어요. 크기만으로 세계 7위이며 관람객 수로도 연 300만명이 넘어 세계 10위 안팎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재만이 아니라 세계 문명전을 많이 유치하고 있는데 현재도 오르세 미술전을 하고 있고, 이슬람 보물전, 터키 문명전, 아프리카 조각전 등 좋은 해외 문화 전시를 계속 유치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급변하는 세계 흐름에 대처하려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지요. 또 외국 전시를 많이 함으로써 굳이 해외로 안 나가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전시는 디스플레이가 중요한데 이번 전시장은 꾸밈이 괜찮은지요, 디자인을 NMK 전문가들이 와서 했는지 라크마가 했는지 궁금합니다.
▲전시작품과 주제의 선정 등 전시 내용은 NMK가 주도했고,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등의 전시 흐름은 각 미술관의 전문가들이 주도했습니다. 미술관마다 공간이 다른데 각자의 특징을 살려서 잘 한 것 같아요. 다만 소중한 문화재를 다루는 운송과 설치의 안전을 위해 NMK의 전문 학예사가 18일 동안 함께 작업하면서 보다 나은 한국 미술이 잘 소개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 전시를 잘 감상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조선미술대전’은 미술전시라기보다 문화전시입니다. 회화전처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실, 사회, 불교, 제의, 근대화 등 문화 전체가 다 포함된 것이라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거예요. 잘 모르는 전시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먼저 부담을 갖지 말고 익숙해지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전체 분위기를 느끼고, 다음에 하나하나씩 감상하는 것이 그 방법이죠. 박물관에 올 때 전에 배운 것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확인이 아니라 모험이고 배우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과 묘미를 많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조선미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절제되고 겸손하며 품위 있다는 것입니다. 도자기만 해도 조선백자는 고려청자와 달리 유교문화에서 오는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서양미술은 한눈에 들어오는데 반해 우리 미술은 조금씩 다가오는 깊이와 점점 빠지게 하는 매력을 가졌어요.
△개인적으로 특별히 감동적인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나 자신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이 꼭 보내달라고 부탁한 ‘백자철화끈무늬병’이 있습니다. 국보가 아닌 보물인데, 우리나라 백자의 멋을 너무나 잘 표현한, 굉장히 현대적 감각을 가진 도자기입니다.
△2세 자녀들과 함께 오는 부모들이 어떻게 가이드하면 좋을까요?
▲제가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아버지(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가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해 주신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도 미술관 일을 하게 된 것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그 분위기가 좋고 자주 가니까 친숙해져서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면 내버려두고 굳이 가르쳐주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엄마와 함께 봤던 것이 생각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부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조선왕실, 잔치를 열다’)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황금의 나라, 신라’) 등 큰 전시가 미국 대도시에서 잇달아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전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하는데요.
▲외유 반대의 주된 이유는 작품에 손상이 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작품의 보존과 운송은 과학이에요. 이삿짐처럼 둘둘 싸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손상의 위험이 있다면 어떤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내보내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전시는 할 수가 없는 것이죠. 보내는 만큼 우리가 받는 세계 문화예술을 생각해 보세요. 해외 박물관들과 오고 가고 보내고 받고 하는 교환에서 좋은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해외 흩어져 있는 문화재가 많은데 환수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2년 전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이 설립돼 해외 문화재 환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파악하기로는 전 세계에 14만점이 흩어져 있으며 이 중 6만점이 일본에 있다고 해요. 문제는 정당하게 나간 것이 있고, 빼앗긴 것도 있는데 그 과정이 애매해서 규명이 힘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해외 한인 소장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좋은 문화재를 가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NMK도 좋지만 라크마에 많이 기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라크마 같은 해외 미술관에 기증해서 한국 미술 컬렉션이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미술사 연구가 해외에서도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소장품이 너무 없으니 한국 미술 전공자와 큐레이터가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죠. 현재 많은 미술관에서 일본과 중국 미술 전문가가 한국 미술 큐레이터도 겸하는 실정인데, 이래서는 아무래도 한국 미술의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장으로서 LA 한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여기 사시는 분들이 라크마 한국 미술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휴스턴 미술관은 그곳 한인들이 똘똘 뭉쳐서 한국 미술 갤러리를 열성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필라델피아에도 한국 미술애호가 그룹이 있어서 지속적인 서포트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이곳에서도 중심이 되는 단체가 결성돼 라크마 한국 갤러리를 많이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라크마 측에서도 한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관심을 가지면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김영나 관장은 - 첫 부녀 국립중앙박물관장… 혁신 주도>
3년 전 NMK에 부임한 이래 많은 개혁과 개선을 통해 한국의 박물관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시킨 인물로 국내외의 찬사를 받고 있다. 박물관은 딱딱하고 지루한 곳이란 이미지를 털어내고, 즐겁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휴식처이자 질 높은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유익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디자인 팀을 만들어 전시품의 디스플레이를 많이 고쳤고 현대적 감각으로 과거의 중요한 문화재를 보여주는 일에 주력하며 관람자 시각으로 박물관 운영에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부친이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초대 박물관장을 지낸 고 김재원 박사의 막내딸로, ‘첫 부녀 국립중앙박물관장’이란 점이 큰 화제를 모았다. 큰언니는 불교미술사학자인 김리나 홍익대 대학원 명예교수.
경기여고와 미국 뮬런버그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사 및 박사를 거쳐 서울대학 교수와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저서로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조형과 시대정신’ ‘20세기 한국미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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