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강 난망 홍명보호 실추된 명예회복 도전
▶ 비장한 각오로 내일 벨기에 최종전 출사표 아직 1승없는 아시아의 자존심도 살려내야
26일 벨기에와의 경기는 홍명보호에게 16강 진출여부를 떠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고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운명의 일전이다.
알제리전의 악몽은 잊자. 16강 진출 경우의 수 계산도 그만 두자. 이제 목표는 벨기에를 꺾는 것뿐이다.
지난 22일 알제리와의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충격적인 완패를 당한 한국 축구대표팀 홍명보호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6일 오후 1시(LA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상파울루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 3차전이 그것이다. 그동안 피땀으로 준비해온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필드에 쏟아 부어야 하는 운명의 한판승부다.
1승 제물로 생각했던 알제리에게 오히려 허를 찔리며 16강 희망에 치명상을 입은 홍명보호로선 이제 무엇보다도 명예 회복이 급선무가 됐다. 1골 차로 이겨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벨기에를 꺾는 것뿐이다.
알제리-러시아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가 벨기에를 최소한 2골차 이상으로 꺾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한국이 벨기에를 꺾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벨기에는 다크호스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팀으로 전력상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알제리 전에서 수비라인이 참담하게 무너잔 홍명보호로선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미 알제리와 러시아를 꺾고 2승으로 16강 티켓을 확보한 벨기에의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16강전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한국과의 3차전엔 부상과 경고가 있는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고 그동안 기용하지 않았던 백업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에덴 아자르(첼시), 로멜루 루카쿠(에버턴) 같은 스타급 선수들과 철벽 수문장 티보 쿠르투아(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부상이 있는 빈센트 콤파니(맨체스터 시티) 등이 빠질 수 있다. 경고가 있는 미드필더 악셀 위첼(제니트), 오른쪽 풀백 토비 알더바이럴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다른 주전선수도 결장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선 1.5~2진급 라인업이 나설 확률이 충분하다.
하지만 백업들이 나온다고 쉬운 경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신예 미드필더 아드난 야누자이(19) 같은 선수들은 계속 벤치를 지키고 있지만 이미 세계적인 선수들이다. 이들은 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고 모처럼 찾아온 월드컵 무대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 향후 더 많은 출전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더 악착같이 뛸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기량은 주전들과 별 차이가 없고 승패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크지 않아 한국으로선 오히려 더 힘든 경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벼랑 끝에서 더 큰 투지를 발휘하는 팀이다. 비록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하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브라질을 떠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16년 전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먼저 선취골을 뽑고도 골을 넣은 하석주가 백태클로 전반 30분에 퇴장당하는 바람에 이후 10명이 뛰면서 후반에 내리 3골을 내주고 역전패를 당한 한국은 거스 히딩크가 지휘하던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대패해 탈락이 확정됐고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최악의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아무 희망도 없던 최종전에서 한국은 네덜란드, 멕시코와 잇달아 비긴 난적 벨기에를 상대로 전반 7분 선제골을 내주고도 끝까지 끈질기게 버틴 끝에 후반 중반 유상철이 동점골을 뽑아 1-1 무승부를 일궈내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벨기에는 결과적으로 한국을 꺾지 못해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16강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벨기에를 꼭 꺾어야 하는 이유도 또 있다. 바로 아시아의 자존심(Pride of Asia)과 관계된 문제다. 아시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직까지 단 1승도 없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고 있다. 4강까지 노린다던 일본이 24일 콜롬비아에 1-4로 완패하며 조 꼴찌로 탈락하는 등 아시아축구연맹(AFC) 산하 4개국이 현재까지 3무7패의 참담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자칫하다간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티켓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동안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해온 한국으로선 아시아 대륙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다.
미드필더 한국영은 “0.1%의 가능성에도 도전할 것”이라며 “이번 경기는 비난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릴 기회”라고 울먹였다.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은 “우리 선수들 가운데 포기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며 “정신적 무장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명보호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는 선수들의 이런 마음자세에 달렸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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