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 11년간 한동대학 교수로 머물면서 받은 혜택가운데 빼놀 수 없는 것이 의료서비스다. 보험료의 대부분을 대학 당국이 부담하고 병원이 부과하는 진찰료나 병원비가 미국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매달 2만원 가량이 내 봉급에서 우리 부부의 보험금으로 공제됐다. 담당의사 진찰료는 6천여원에 지나지 않는데다 그것조차도 대학부속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경우 30%를 공제받는다. 미국처럼 예약을 할 필요가 없는데다 진료 및 검사 결과를 당일 받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담당의사의 진료에 따른 혈액, CT, X-ray, MRI검사 등의 결과를 당일 오후면 알수 있도록 하는 부서간의 일관제도가 잘 형성되어있다. 검사비용은 미국에 비해 반값도 되지 않는데 많은 부분을 국민보험이 감당한다.
대학부속병원을 비롯해 대형병원 접수실에는 아침 일찍부터 수백명의 환자들이 장사진을 친다. 접수실이라기 보다 접수광장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마치 서울역 대합실같은 느낌을 준다. 환자들은 대기표 기계에서 번호를 미리 뽑아 순서에 따른 호명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한국을 의료보험 천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마다 정말 환자들이 많다.
왜 이렇게 환자들이 많을까? 한국의 모든 국민은 누구나 국민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보험료가 택도 없이 싸기 때문에 왠만한 감기에 걸려도 너도나도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60년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직장과 지역 등 두 가지 형의 국민보험이 있다. 직장보험은 고용주가 들어주는 보험으로 보험료를 고용주 고용인이 분담한다. 지역보험은 직장이 없는 사람 또는 자영업자가 주거지에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보험을 들며 본인이 전액 부담한다. 직장보험의 부담액은 봉급액수에 따라, 지역보험의 부담액은 수입 또는 자산에 따라 정해진다.
한국과 미국 의료보험은 각각 직계가족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부모와 연령에 관계없이 결혼하지 않은 자녀는 모두 보험혜택을 받는 직계가족이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부모와 결혼유무에 상관없이 18세 이상된 자녀는 대학재학생을 제외하고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의한 대가족제도와 미국의 핵가족제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한국에 국민보험을 가지고 있는 자녀를 둔 미국에 사는 부모들이 한국에 나가 진료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지난 주 한국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특별조치’가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한국특유의 면모를 보여주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이 공단은 국민의료보험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이다. ‘특별조치’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의료보험 무자격자가 더 이상 진료를 받지 못하도록 한다는 조치다. 또 앞으로 이런 사례가 발견되면 의료기관이 청구하는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조치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동안 무자격자들이 진료를 받아 왔으며 보험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된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개인병원 또는 대형병원에서 진료접수를 할 때 접수담당자가 본인확인절차를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어차피 보험료는 공단이 지불하니 누가 환자이던 상관이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건강보험증을 제시하면 이를 주민등록증과 대조하여 본인확인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접수서를 기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재외동포가운데 어떤 사람은 한국에 있는 친척의 건강보험증을 빌려 부정적으로 진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공단에 따르면 이런 무자격자들이 2011년부터 3년 동안 24만 명에 이르며 지급액은 2,2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은 시민권 및 영주권 재외동포들이 한국에 3개월 이상 체류 할 경우 지역 출입국사무소에 거소신고를 하면 국민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65세 이상 이중국적자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정부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민건강보험 부담액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뾰죽한 묘안이 없는 것 같다. 공단의 건강보험 무자격자 제거조치가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허종욱, 위싱턴침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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