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어쩔 수 없이 이라크 내전에 휘말려 있긴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열정을 쏟겠다고 다짐하는 어젠다는 따로 있다. ‘기후’ - 그가 마지막 남은 숙제로 마치기 원하는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6월에 들어서면서 오바마는 지난 몇 년 미루어 두었던 이 숙제에 착수했다 :첫 주엔 2030년까지 미 전국 발전소의 온실개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최대 30% 감축한다는 환경보호청(EnvironmentalProtection Agency) 규제안을 발표했다. 둘째 주초엔 케이블TV ‘쇼 타임’에서 방영된 심층 인터뷰를 통해 “과학은 과학이다”라고 전제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결의, 그동안의 대응과정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둘째 주말엔 UC어바인 졸업식 축사를 통해 정적들의 기후변화 회의론을 “달은 치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억지라고 조롱하며 대책의 필요성을 열정적으로 호소해 3만명 참석자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주 17일엔 태평양의 해양보호구역을 대폭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취임 첫해였던 2009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리던 코펜하겐으로 날아가 세계를 향해 약속했었다. “2020년까지 온실개스 배출량을 17% 줄이겠다” - 담대하지만 위험한 약속이었다.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던 의회에 최종결정권이 속해있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우려대로 ‘초당적’으로 추진을 시작했던 기후법안은 다음해 여름 상원에서 죽어버렸고 미국대통령의 약속은 신뢰도를 잃었다.
이제 오바마는 약속 이행을 결심한 듯 보인다. 대책의 입법화를 거부하는 의회를 우회하여 미 역대 어느 대통령이 취했던 것 보다 가장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을 발동해 2일 발표한 EPA 규제안은 미국의 기후변화 대책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규제안이 기후변화에 의한 지구온난화 추세를 반전시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구온난화는 말 그대로 지구 전체의 문제이고, 미국이 30%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중국과 인도 등 온실개스 대량 배출국들이 따르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한다고 기후과학자들은 단언한다. 우선 발전소는 주요 온실개스인 이산화탄소의 미 전체 배출량의 38%를 뿜어내는 오염의 주범이다. 자동차 연비규제보다 발전소 규제의 배출량 감축효과가 80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규제안의 중요한 또 다른 의미는 기후변화 전쟁에서 미국의 잃었던 리더십을 되찾는데 있다. 오바마의 코펜하겐 약속 이행은 규제안이 제대로 시행되면 가능해 질 것이고 다른 나라에게도 야심찬 목표를 세우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미국은 당장 오는 9월 뉴욕에서 열리는 기후관련 세계정상회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구를 구하는’ 전쟁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 이번 규제안이 앞에 놓인 모든 장애를 넘어 일정대로 시행되었을 경우다.
EPA가 내년 6월까지 최종내용을 확정할 이번 규제안은 관련 산업과 각 주에 목표달성을 위해 제각기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고 있다. 기존발전소를 폐쇄하든지, 개량하든지, 청정에너지나 천연개스 사용을 늘리든지,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시키든지…각 주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감축효과를 달성할 시행안을 2016년 6월30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찬반논쟁이 격화되면서 규제대상 업계와 공화당의 저지 노력이 법정과 의회에서 전개될 것이다. 전기요금 올리고 일자리 죽이는 ‘석탄과의 전쟁’이라며 업계는 이미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전략을 바꾼 듯하다. 지도부조차 줄줄이 “난 과학자가 아니야, 내게 묻지 마”라며 기후변화 그거 사실 맞아? 식으로 외면하려 한다. ‘초당적 합의’가 가능했던 시절, 뉴트 깅리치와 낸시 펠로시가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광고를 함께 찍었던 일은 기억 속에서 아예 지워버린 듯싶다.
공화당의 큰손으로 기후변화 대책 반대의 선두에 선 억만장자 코크형제의 수퍼팩은 이미 수십명 공화의원들에게서 “어떤 기후변화 대처법안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아두었다면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공화당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되고 있다”고 뉴요커의 제프리 투빈은 개탄했다.
어렵게라도 이같은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다면 EPA 규제안은 미국의 선도로 지구온난화 위기에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진지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실현시키려는 오바마의 의지도 뜨겁다. 지난주 인터뷰에서 “여론만 함께 하면 못할 게 없고 여론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다짐했다. “앞으로 2년 반 동안 나의 주요과제는 여론을 바꾸는 일이다”
이번 규제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상당히 높다. 오바마의 외교정책 지지율이 37%로 폭락한 어제 월스트릿저널 조사에서도 규제안 지지는 67%를 기록했다. 문제는 기후변화를 보통사람들에게도 추상적 위협이 아닌 심각한 당면이슈로 실감케 하는 설득력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숙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하자. 깨끗한 지구를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도 오래오래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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