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캔터의 패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연방하원 다수당 원내대표로 공화당 2인자인 캔터는 2년 전 버지니아 주 예비선거에서 79% 득표율로 압승했던 7선의원이다. 2010년 급부상한 티파티 정치인들 지원에 앞장서고 원내에서 그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당 기득권층과의 대립에서 다리역할을 담당해온 공화당의 대표적 차세대 리더인 그가 무명의 티파티 후보에게 패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선거 당일인 10일 아침 워싱턴포스트도 “이번 선거의 관심은 그가 얼마나 큰 표 차이로 승리할 것인가다. 20포인트 이상이면…”이라고 시들하게 보도했고 지난 주말 캔터진영이 의뢰한 맥래플린 여론조사에선 34포인트 리드로 집계되었다.
결과는 그냥 패배도 아닌 참패였다. 500여만 달러 선거자금을 확보하고 값비싼 참모들을 거느렸던 그가, 20여만 달러 모금에 그쳐 유급 스탭 달랑 2명뿐이었던 정치초보 경제학 교수 데이빗 브랫에게 득표율 55.5% 대 44.5%, 무려 11포인트 차이로 무너진 것이다.
언론들도 놀랐다. “미 의회선거 사상 최대 이변”에서 “정치적 쓰나미, 대지진, 화산 폭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유가 ‘충격적 패배’ 보도에 동원되었다.
차기 연방하원의장 후보 1순위로 꼽히며 멀게는 최초의 유대계 대통령을 바라보았을 캔터의 꿈은 10일 밤 허무하게 사라졌고 어제 대표직 사임의사를 밝힌 그는 곧 정계에서 퇴장할 것이다. 그러나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을 계속 뒤흔들 캔터 ‘지진’의 후유증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캔터 패배가 확정된 직후 월스트릿저널의 첫 보도는 “캔터의 패배와 함께 이민개혁도 패배했다”로 시작했다. “중간선거 전 하원 공화당의 이민개혁안 통과를 기대했던 일말의 희망은 10일 버지니아 선거로 물거품이 되었다…”
브랫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이슈는 ‘이민’이었다. 캔터는 중도가 아니다. 강경보수다. 상원의 포괄적 이민개혁안도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엔 이민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소수계 표밭을 확보할 수 없고 소수계가 등 돌리면 2016년 대선에 승산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도부에 속한 캔터가 국경강화 전제를 단단히 못 박으면서 공화당 버전의 드림법안인 ‘키즈법안’을 추진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브랫은 캔터를 ‘사면’ 지지자로 몰아붙였고 캔터진영은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자신의 소신을 설득력 있게 알리는 대신 ‘키즈법안’은 접어둔 채 자신이 사면 반대자라는 광고선전에만 치중, 오히려 불신만을 조장한 역효과를 낳았다. 재계의 이익 대변, 모금위한 전국순회 등에 바빠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해온 캔터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이미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다. 캔터는 예비선거 당일에도 지역구가 아닌 워싱턴에 있었다.
캔터 진영은 이런 표심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위험을 감지한 것은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캔터의 패인을 파고들면 ‘정치가 캔터’의 야심과 자만이 빚은 오류도 있고, 유권자 6만5,000명에 불과한 그 지역 극우보수 문화가 빚어낸 극단적 분노의 표출일 뿐 전국적 여론과는 거리가 먼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단히 불행한 일이지만 캔터의 패배는 앞으로 공화당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이민’은 캔터의 주요 패인이 아닐 수도 있다. 캔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민개혁안을 지지하는 린지 그래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같은 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예선에서 티파티 후보들을 누르고 낙승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이민개혁은 죽었다”고 단언하는 정치해설가가 한 둘이 아니다. 캔터 패배를 목격한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이민개혁안 지지는커녕 언급조차 꺼릴 것이다. 공화당의 하원 장악이 계속되는 한 몇 년이 될지 이민개혁안 성사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민뿐이 아니다. 공화당의 극우보수화가 계속되면서 워싱턴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의 국정과제라면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아무 것도 안하는 의회’에 머물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예비선거 초반 공화당 현역의원들의 승리가 거듭되자 기득권층이 선언했던 ‘티파티의 종말’은 과장이었음도 드러났다. 티파티는 아직 건재하며 최초의 원내대표 예비선거 패배라는 ‘역사적 이변’을 발판삼아 기세를 올릴 것이다. 캔터의 사임의사 발표와 함께 벌써 시작된 고위당직 자리다툼에도 티파티 후보들이 전보다 훨씬 대담하게 뛰어들 것이다. 가라앉은 줄 알고 잠시 안심했던 공화당 내분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다시 불붙고 있다.
‘상원 탈환’을 꿈꾸는 공화당에게 금년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극단적 이념으로 무장한 수준미달의 티파티 후보들을 제치고 정통보수 기득권층 후보들의 본선진출이 잇달으면서 예비선거 초반의 조짐도 좋았다. 그렇게 11월 승리의 장밋빛 전망에 젖어있다가 갑자기 복병을 만난 것이다.
지도부 공백기를 틈타 티파티 돌풍이 공화당의 뿌리를 또 한 번 흔들어대지 않을지, 공화당의 위기 대응을 전국이 함께 우려하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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