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화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문화 산책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1시간 넘게 동북쪽으로 날아 적도에 가까운 도시 이키토스(Iquitos)에 내립니다. 거기서 1시간 반 정도 버스로, 그리고 1시간 남짓 걸어서 아마존 우림 정글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40일 동안 머뭅니다. 뭔가 ‘비전’을 찾는다는 뜻의 ‘Vision Quest(비전 퀘스트)’ 그런 명목으로 6주 여정에 나선 겁니다. 딱히 ‘비전’이랄 것도, 따로 ‘찾는 것’ 또한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돌아오기’ 위해 나선 길입니다.
오랜 단식으로 영양가 없는 피를 극성맞은 모기떼에게 억지 공양하며 매우 어렵게 지내던 어느 날,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영화 한편 보잡니다. 겨우 이삼십분 남은 배터리의 i패드로 단편영화 한편을 보자는 겁니다. 전기와 인터넷과 세상의 문명이 모두 끊어진 정글 속, 엉성한 모기장 속에 둘러앉아 몇몇 사람들과 함께 보는 20여분 남짓 짧은 영화. 그런데, 그런데 ... 그 여운이 장난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문명 속으로 되돌아와 다시한번 보는 그 영화의 제목은 바로 ‘나비 서커스(The Butterfly Circus)’입니다(유튜브와 구글검색으로 쉽게 찾음). 제법 그럴듯한 음악이 흐르면서 차량 행렬이 구비 구비 길을 휘감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22분 36초의 짧은 영화가 시작부터 당당하더니 곧바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기승전결’ 구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빠른 장면 전환과 영화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탄탄한 편집, 그리고 배우들의 충실한 표정 연기 등이 순하게 어우러지면서, 이 짧은 영화는 서너 시간 짜리 사극에 버금가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아, 짧고 ‘굵게’ 전하는 단편영화의 짜릿함이여! 그렇게 ‘나비 서커스’는 보는 이들의 가슴 비파를 울립니다.
여러 독립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 영화상,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인상, 최우수 단편 영화 주연 배우상 등을 거머쥔 이 단편영화의 중심엔 바로 그 사람,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있습니다. 팔다리 없이 태어난 사람. 그럼에도, 사지 멀쩡한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영감을 선사하는 세르비아 사람 ‘닉’은 이 단편 영화 속에서도 여전히 “신마저 등을 돌린” “사지 없는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어느 싸구려 서커스의 ‘괴상한’ 인간으로, 수염 기른 여인, 둘이면서 하나인 여인[들] 속에 끼어 그저 ‘사지 없는” 괴물로 수모 당하는 부이치치의 극중 이름은 ‘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윌’이 전혀 ‘will’(의지)가 없는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인물로 그려 냅니다. 적어도 ‘어느 때’가 도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늘마저 저버린 버림받은 인생’의 희생자로 살아가는 ‘윌’의 인생이 그토록 저주받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요?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르잖아요?” 라며 인생을 포기한 ‘윌’에게, “그건 바로 네가 그렇게 믿기 때문이지”라고 단박 지혜의 자비를 베푸는 건 바로 ‘나비 서커스’ 단장입니다.
“그대가 고통으로 여기며 인생을 포기하는 그 장애, 그게 바로 그대의 은총일 수도 있지”라는 말을 슬쩍 던지는 서커스 단장의 눈매가 인상적입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그렇게 의아해하는 연기가 제법 명배우 뺨치는 ‘닉’에게 단장은 마침내 이렇게 일갈합니다.
“The greater the struggle, the more glorious the triumph!(어려운 투쟁일수록 그 승리는 더욱 영광스러운 법!)”사람이 인생살이로 지독하게 고생하는 건, 바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지극히 높은 은총을 몸소 체험하기 위함이란 ‘고매한’ 진리를, 이 짧은 영화는 다만 20여분 만에 찡~하게 전합니다. 특히, 이때다 싶은 절묘한 순간 때맞춰 울리는 고상한 음악은 영화 전편의 분위기를 매우 고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동입니다. 그래서, 심금을 울립니다.
아마존 밀림 속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버티던 ‘비전 퀘스트’의 40일. 나름대로 의미있는 여정이었지만, “울려고 내가 왔나?”를 간단없이 되뇌던 ‘시련(?)’의 나날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만난 감동의 단편영화 한편. 물론, ‘나비’가 의미하는 변신의 메시지도 그럴 듯하려니와, 그럼에도 바로 코앞에 다가오는 메시지는 은근히 기다려지는 ‘더욱 영광스러운 승리’ 다름 아닌 ‘the glorious triumph’, 그것이더군요.
이제, 참으로 편리한 문명 속으로 복귀해 편안한 일상에서 다시 보는 ‘나비 서커스’ 그 감동과 여운은 아마존 정글 속에서 느낀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The greater the struggle, the more glorious the triumph!” 이 말씀의 진동은 더욱 진하게 내 안팎을 여전히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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