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예비선거 결과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던 3일 밤 안도의 숨을 가장 크게 내쉰 것은 공화당 지도부였을 것이다. “닐 카시카리가 팀 도널리를 꺾고 11월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환호성을 들었다면 한인들은 물론 대다수 유권자들이 반문했을 것이다. “그게 누군데요?”
참 이상한 선거였다. 최대 관전 포인트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두 주지사 후보 간의 대결, 그것도 어차피 본선에선 민주당 제리 브라운 현 주지사의 압승에 압사당할 게 거의 확실한 공화당 후보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명인사’의 도토리 키 재기였다.
파산직전의 캘리포니아를 회생시킨 브라운의 4선이 기정사실화된 와중이지만 그래도 ‘경험 있고 재력 갖춘 수준급 후보’를 기다리던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이민 극우보수 티파티 후보인 팀 도널리 주하원의원이 공화당으로 출사표를 던진 5명 중 선두로 부상하고 있었다.
국경순찰 자경대 ‘미닛맨’의 리더로 불법이민과의 ‘전쟁’을 선포했는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막말을 서슴치 않고 총기를 휴대한 채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되어 현재도 집행유예 중인 도널리가 ‘공화당 후보’로 본선에 진출한다?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는 공화당 지도부엔 뒤늦게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가주 공화당의 이미지가 더 한층 손상되어 전국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두려워했고 다른 공직에 출마한 공화후보들에게 덩달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경고가 잇달아 나왔다. ‘도널리 재난’을 피해갈 대안으로 선택된 후보가 닐 카시카리였다.
3월초 지지도가 2%에 불과했고 지난주까지 계속 도널리에 뒤지다가 막판 스퍼트에 성공한 카시카리는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 LA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도널리를 앞섰다. 그리고 3일 선거에서 54.5%를 차지한 브라운에는 훨씬 뒤졌으나 19% 득표로 14.9%에 그친 도널리를 제치고 본선진출 티켓을 확보한 것이다.
미트 롬니, 젭 부시, 피트 윌슨에서 콘돌리자 라이스와 칼 로브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유명인사들의 공개지지도 힘이 되었고 자신의 사재 2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TV광고가 ‘승리’의 주요 동력이 되었지만 카시카리는 즉흥적으로 승산 없는 싸움에 뛰어든 아마추어는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구체적 제안으로 무장하고 출전한 나름 준비된 주자다.
40세 카시카리는 젊고 부단한 에너지로 넘쳐난다. 프로필도 흥미롭다. 오하이오 태생의 인도계 이민 2세로 2008년 피플 매거진의 ‘가장 섹시한 남성들’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일하다 명문 유펜의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은 후 골드만 삭스에서 투자은행가로 부사장까지 승진했다가 35세였던 금융위기 당시 연방재무부에 발탁되어 7천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운용 책임 차관보로 활약했는가 하면 주지사 출마결정 전까지는 세계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중역으로 일했다.
진로를 바꾸며 주변에서 “미쳤냐?”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었다. 골드만 삭스에서 연방재무부로 옮길 때, 그리고 주지사 출마를 위해 핌코를 사임했을 때. 그러나 공직은 10대 시절부터 그의 관심을 계속 끌어온 분야였다. 출마를 결정하기 전 그가 처음 조언을 구한 사람은 금융위기 시절 자신이 도왔던 부시대통령이었다. 1994년 현직을 꺾고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되었던 부시에게 비결을 물었다. 부시는 “사실(facts)이 우리 편이었다”고 대답했다. 당시 텍사스가 당면한 사실에 집중했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월 핌코를 사임한 후 1년 동안 카시카리는 소수계 커뮤니티와 저소득층 지역을 방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과제를 정리하는 현장분석에 몰두했다.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내가 공화당이란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웰페어보다는 일자리였다”
캠페인 주제도 심플하게 정리했다 : 일자리와 교육이다. ‘10가지 일자리 플랜’이라는 구체적 제안서도 공개했고 경제가 성장해도 교육에 실패하면 소득불평등이 확대된다며 교육개혁 청사진도 제시했다. ‘친 기업 재정적 보수’를 표방하는 그는 사회문제에선 중도 진보다. 낙태권리와 동성결혼을 반대하지 않으며 불법이민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카시카리가 출발부터 꼽아온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승리, 둘째는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새로운 공화당 재건 - 배타적이고 반대를 일삼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해 소수계와 여성, 젊은 층에 어필하는 ‘빅 텐트’ 정당으로 새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다.
어제부터 이미 브라운을 공격하는 본선 캠페인에 돌입했지만 카시카리의 당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에 가깝다. 그보다는 빈사상태 가주 공화당에 새 희망을 불어넣으며 내일 위한 기반을 닦는 일이 새얼굴의 젊은 열정과 추진력을 자산삼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발음하기조차 까다로운 그의 이름은 앞으로 5개월 브라운에 필사적으로 도전하는 동안 상당히 익숙해 질 것이다. 카리카시는 중산층을 무너지게 한 책임을 물어 브라운의 대답을 전 주민이 듣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난생 처음 공직에 출마한 새내기가 백전노장을 과연 어디까지 압박해 갈 수 있을까…어쩌면 금년 주지사 선거가 예상보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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