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 정답이지만 상대방이 실수하여 내가 이기는 수도 있다. 반사이익이다. 카지노의 블랙잭 게임에서 내가 꼭 블랙잭을 가진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딜러가 버스트하면 내 끗발이 형편없는 데도 내가 승자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축구의 자살골도 그런 원리다.
한국의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실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자살골 덕분이다. 첫 번째 자살골은 형편없는 세월호 수습과정의 미숙이고 두 번째 자살골은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 낙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국가개혁 적임자로 국민들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 찾고 있다”고 총리인선의 원칙을 밝혔다. “국민들께서 요구하는 분을 찾고 있다”는 이 표현은 폭탄적인 선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박근혜 인사스타일은 직언하는 사람보다는 충성하는 사람을 발탁해 왔다. 얌전하고 정직한 모범생, 법조계 엘리트나 관리, 아니면 학자 출신 등 정치경험보다는 행정경험이 많은 인사를 중용해 왔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구상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이회창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이미지를 어떻게 무너트렸는지를 잘 알고 있다. YS가 대가 세고 소신이 있는 대법관 출신 이회창을 총리로 임명 했을 때 국민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이회창이 총리로 취임하여 김영삼 정부를 들여다보니 엉망이었다. 아들인 김현철이 정부 인사를 좌우하는데다 총리인 자신을 도청하는가 하면 외교와 국방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안보회의에 총리를 참석시키지 않는 한심한 현실에 놀랐다.
그는 정보부 도청팀 해체를 당장 명령하고 대통령에게 총리의 안보회의 참석을 주장했으며 행정부 안에서 실세 노릇을 하는 최형우 장관을 각의에서 나무라는 등 과감한 행동을 보여 국민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YS 참모들과 부딪치는 일이 잦고 대통령이 총리의 직언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눈치가 보이자 취임 4개월 만에 사표를 던져 버렸다. 80% 지지선을 달리던 YS의 인기가 이때부터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반면 이회창은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부상해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닦는데 성공했다.
줏대 있는 총리가 대통령과 싸우고 뛰쳐나가면 대통령 감으로 인정받는 것이 한국적인 현실이다. 총리 잘못 선택하면 대통령이 누구 대통령 운동 해주는 꼴이 된다. YS가 이회창을 총리로 발탁 했다가 얼마나 골치를 썩혔는 가는 그의 자서전에도 나타나 있다. 총리가 빛이 나면 대통령이 빛을 잃는 것이다.
달과 태양의 빛이 비슷하면 대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 대통령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더구나 박근혜는 제3 공화국에서 김종필, 이후락, 차지철, 박종규 등이 2인자로 떠오른 현실이 아버지인 박정희에게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 몸으로 겪은 정치인이다. 참모들 권력다툼(차지철과 김재규)이 대통령의 피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국민들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총리로) 찾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자신이 좀 불만족스럽더라도 국민이 선호하는 인물을 과감히 총리로 선발하겠다는 의미다. 소신있게 직언하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더라도 현재의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이번 기회에 크게 탈바꿈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탈바꿈 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죽을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영남 출신과 법조계 출신은 이제 그만 발탁했으면 좋겠다. 정 총리를 포함해 장관급이 7명이나 된다. 모두가 모범생 스타일이다.
한국의 사회 분위기가 너무 긴장되어 있다. 국가의 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좀 부드러워져야 한다. 대통령부터 변해야 사회 분위기가 변한다. 그것이 개혁의 시범이다. 대쪽 같으면서도 서민적인 국민통합형 총리를 등장시키는 것이 대통령도 사는 길이다. 박근혜의 리더십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총리인사에 또 실패하면 박대통령은 “외교에는 귀신, 인사에는 등신”이라는 별명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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