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과(謝過)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워낙 참담하고 황망한 일을 졸지에 당하고 나니 몇몇 언론인들이나 정치인 심지어 장관이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일부 언행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당연히 사과가 있었지만 유족과 국민 앞에 한 사과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진정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른바 간접 사과, 앉아서 하는 사과, 주어(主語)가 빠진 사과, 물타기 사과, 유사(類似) 사과 등등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을 가져왔다. 결국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며 대국민 담화의 형식으로 사과를 하였다. 담화에는 대통령의 애도의 마음을 담은 사과 표현과 재발 방지를 향한 다소 충격적인 대안들도 나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사람 먼저의 안전한 사회를 향한 근본적 반성과 성찰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풀어 줄 몇 분 걸리지도 않을 질의응답 시간도 생략 한 채 외국 방문을 이유로 대통령이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서둘러 자리를 뜬 점을 들어 사과의 진정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은 진정한 사과의 자세가 아니다. 피해자 곧 사과를 ‘받는 사람’ 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하는 사람’ 중심의 사과는 화해나 치유가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상처나 실망감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일반인이나 공인(公人)을 무론하고 누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누구나 사과 할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미국 시인 에머슨(1803~1882)은 “분별 있는 자는 사과하는 법이 없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럴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어디 얼마나 있겠는가? 오히려 요즘 현실에 맞게 눈높이를 낮춰 ‘지혜롭고 분별 있는 사람이란 곧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그 표현을 바꾸어야 할 듯하다.
요즘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높다. ‘사과’의 의미와 올바른 사과의 자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에서 진정한 사과를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는 ‘미안해’ 라는 말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구차한 변명을 붙이지 말라고 제안 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면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명확히 표현 하라고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개선 의지를 보이고, 책임과 보상의 의사를 밝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상대방의 용서를 청하라고 한다. 그는 사과의 표현이 애매하거나, 잘못을 축소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덜려 하거나, 간접 사과를 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하는 사과는 좋지 않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사과는 단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그 이상이다. 사과는 인간관계는 물론 국가 사이에서도 갈라진 관계 회복의 열쇠이며, 갈등과 위기를 풀어나가는 상생의 소통법이며, 매우 강력한 갈등조정수단이다. 책임 회피나 변명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적 자세야말로 피해자와 관계 회복을 이루는 첫걸음이다. 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리더들에게 최고의 ‘위기관리 언어’는 ‘사과’라며 사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사과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인간관계의 위기 속에서 서로를 용납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사과는 또한 과거지사가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현재의 관계를 이어주며, 미래를 함께 열어 가게 한다. 비록 지나간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이지만, 사과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훌훌 털고 현재를 살기 위함이요, 함께 미래를 지향하는 일이다.
간명직결(簡明直結)하면 사과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는 솔직하고 책임적이며 용기 있는 마음, 상대방의 아픔에 대하여 진심으로 송구해 하는 마음, 상대방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겸손한 마음,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결사의 각오에서 나온다. 사과, 해야 할 때에는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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