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 형사법원에서 디즈니 컨서트홀 주차장까지 걷는 길은 너무 뜨거웠다. 100도 넘는 남가주의 불볕더위는 전에도 몇 차례 경험했다. 그러나 에어컨 켠 차를 타고 에어컨 켠 직장과 집을 오갔던 것과 배심원 소환통지를 받은 이번 주 초 90도를 훌쩍 넘긴 한낮의 다운타운 몇 블록을 걸어야했던 것은 완전히 달랐다. 토마토처럼 익은 얼굴에 비지땀을 흘리는 행인이 되어 5월 봄날과는 거리가 먼 ‘무자비한 폭염’에 허덕이면서 지난주 백악관이 발표한 전국기후평가 보고서를 떠올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관련보고서가 최근 잇달아 발표되었다.
3월말엔 유엔이 구성한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모임인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의 보고서가 나왔고 지난주엔 미연방정부기관인 전국기후평가(National Climate Assessment)의 300여 전문가들이 연구 분석한 839페이지짜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번 주 들어서 12일엔 우주항공국과 미 과학진흥협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속도로 녹고 있는 남극빙하관련 연구결과가 동시에 소개되었으며 13일엔 12명의 미 퇴역장성들이 해군분석군사자문센터 새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환경만이 아니라 미 국가안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의 현상 및 예측과 그 영향에 대한 경고는 몇 번을 들어도 충격적이다 : 지구 북반구의 1983년~2013년은 과거 1,400년 동안 중 가장 더웠던 30년이었으며 온난화의 요인인 이산화탄소의 대기권 농도는 과거 80만년 동안 최고기록으로 높아졌다. NCA 보고서의 해수면 상승 예측 수치는 과거 3피트에서 6피트까지로 상향조정되었다. 플로리다 상당부분은 4피트만 넘으면 물에 잠긴다. 이대로 방치하면 폭염과 가뭄, 홍수와 태풍 등 극심한 이상기후가 잦아질 것이다. 극단적 기후변화는 식량과 물 부족을 초래해 분쟁과 갈등의 기폭제가 되어 미국과 세계안보에도 위협이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확실하냐고 물으면 미국인의 67%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지난해 퓨센터 조사결과다. 2006년 77%에서 줄긴 했지만 여론은 지금도 압도적으로 지구온난화를 믿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국가 주요이슈라는 응답은 40%(퓨조사), 개인적으로 우려한다는 응답은 3명 중 1명에 불과하다. 50%에서 70%에 이르는 다른 선진국 여론에 비해 훨씬 낮다.
왜 대다수 미국민은 기후변화에 무관심한가. 먼 미래, 먼 곳의 이야기로 여겨져서다. 내 집이 산불에 타지 않고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는 한 위기감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주 연방보고서는 바로 이런 현실을 겨냥하고 있다.
살인적인 폭염과 끈질긴 가뭄, 맹렬한 산불의 연속으로 더욱 달궈지는 서남부, 점점 잦아지는 태풍과 폭우,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동부, 빙하가 줄어들고 영구동토도 녹아내리는 알래스카와 산호초가 죽어가는 하와이 등 지역별로 기후변화의 영향과 대책을 짚어가며 이렇게 강조한다 : “이런 재난들은 미래의 예측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막을 대책에 대한 정치투쟁도 가열되고 있다. 전 세계가 함께 고통 겪는 기후문제는 초당적이어야 하지만 워싱턴에서 ‘기후변화’는 민주 공화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당파적 이슈에 속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워싱턴의 대처는 지난 몇 년간 뒷걸음질 쳐왔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온실개스 배출제한법안을 공동 작성했고 공화당 정강에 지구온난화 대책을 포함시켰으며 2009년 하원은 연방의회사상 첫 기후변화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법안은 이듬해 상원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010년 티파티 등극이후 기후변화에 등 돌린 공화당은 아예 지구온난화가 사실인가, 인간에 의한 것인가라는 지나간 기본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때 지구온난화대책 수립에 앞장섰던 2016년 공화당 대선 예비주자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지난 주말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행동이 기후변화 초래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공화당 예비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공화당 정치가들은 기후변화 회의론을 견지할 것이다.
의회의 입법화 실패 이후 행정명령을 통해 자동차 연비기준 강화 등을 시행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6월초 기존 발전소에 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계획이다. 석탄업계와 공화당의 거센 반발과 함께 법정소송으로 치닫는 일대 격돌이 벌어질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얼마나 더 악화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희망도 준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신속히 줄이면 위험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테이프를 되돌린 듯 지구가 정말 더워지고 있느냐, 자연현상 아니냐고 다시 묻고 있다.
그러나 이상기후의 영향은 이제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혼돈’이라고 불러야할 정도로 사방에서 돌출하고 있다. 화창한 봄을 즐겨야하는 지난 주말 콜로라도와 와이오밍엔 폭설이 쏟아졌고 때 이른 살인더위가 몰아친 남가주는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14일 오후 현재 30채의 주택을 태운 샌디에고 산불로 이 지역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계속 뜨거워지는 지구를 실감하는 한주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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