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차별의 역사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과 고용에서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은 상당히 양면적이다. 같은 주제에 대해 묻는데도 두 여론조사의 결과가 정반대다. 금년초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선 63%가 ‘좋은 정책’이라고 지지했으나 지난해 ABC뉴스-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선 76%가 대학입학 심사요소에 인종을 포함하는 것을 반대했다.
대학이 인종적으로 다양해지기 원하고 평등한 기회 확대를 위해 우대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대학입학 여부를 학생의 피부색에 의해 좌우하는 정책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같은 거부감은 어퍼머티브 액션 주민투표에서 확실하게 반영되어 왔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8개주가 주민투표를 통해 공립대학의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주 연방대법원이 합헌성 판결을 내린 미시간 주의 금지안도 이중 하나다.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에 대한 위헌 판결은 아니다.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대해 유권자가 투표로 금지시킬 권한이 있다고 판정한 것이다. 사망선고는 아니다. 그러나 생사여부 결정권이 유권자들에 달렸고 상당수 주들이 금지안을 추진 중이니 어퍼머티브 액션은 이제 산소호흡기에 매달린 시한부 생명이다.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는 어퍼머티브 액션의 종말을 우려하며 그 필요성에 대한 찬반논쟁이 재개되었다. 인종차별의 시대는 지났다고 믿는 보수파 대법관들의 신념이 확실하게 반영된 이번 판결의 전후로 클리퍼스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과 네바다의 목장주 클리븐 번디의 흑인비하 발언 등 인종주의 파문이 확대되면서 어퍼머티브 액션 논쟁도 한층 가열되고 있다.
논쟁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
첫째, 아직은 필요하다. 인종차별의 역사와 지속적 불평등이 엄존하는데 인종을 무시하는 시스템이 인종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불평등 제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기적 과제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하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정당한 치유책이 아닌 불공정한 특혜로 규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인이 다수인 유권자 손에 소수계 우대정책 생사 결정권을 넘겨 준 것이다.
둘째, 이젠 필요 없다. 2014년의 세상에서 정부가 주민을 다르게 차별대우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특정인종 우대는 차별이며 그 같은 인종차별은 불공정하고 대학의 질을 낮춘다.
셋째, 인종과 상관없이 대학 캠퍼스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우대정책 적용이다. 각 고교 성적 상위 9~10% 학생들에게 주립대 입학을 보장하는 등의 사회·경제적 플랜은 잘 구상하면 인종우대 정책보다 소수계학생수를 더 많이, 더 긍정적으로 늘릴 수 있다.
제각각 근거와 논리를 갖춘 이성적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서 캘리포니아의 어퍼머티브 액션논쟁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18년 전 통과된 캘리포니아의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 주민발의안 209의 폐기를 11월 주민투표에 회부하려던 상원법안이 4월초 좌절된 것이다. 금년 초 주 상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민주당 법안이다. 거센 반대의 진원지는 백인보수진영이 아니었다. 1월초 상원표결 당시 모두 찬성표를 던졌던 민주당 아시아계 의원들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복원될 경우 불이익을 우려한 아시아계 특히 중국계 커뮤니티의 강한 압력을 받은 이들이 주 하원의장에게 유보요청 서한을 보냈고 하원의장이 이를 수용, 법안처리를 연기시켰다.
대신 주의회는 입학정책 변경 필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 연구할 전담반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어퍼머티브 액션을 둘러싼 같은 민주당 내 소수계 끼리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자칫 아시안 대 라티노, 아시안 대 흑인의 대립이 가시화 될 상황이다. 이미 입장을 바꿔 반대한 중국계 의원들에 대해 금년 선거에서 타 커뮤니티의 공개지지가 철회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UC 재학생 중 40%는 아시안이다. 14%인 주 인구비율의 3배에 달한다. 그러나 발의안 209 시행 이전에도 인구비율의 3배 이상이 UC에 재학하고 있었다. 통계수치로 본다면 어퍼머티브 액션 유무가 우려만큼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차별에 대한 보상’에서 ‘대학의 다양화 실현’으로 전개되어왔던 어퍼머티브 액션의 쟁점은 이제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해관계’로 옮겨가고 있다. 냉철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어퍼머티브 액션 복원을 지지하는 측에선 이 정책이 수혜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이롭다는 사실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반대하는 아시안에겐 우리아이들에게 불리하다는 항의보다는 효과적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안은 가장 성공적인 소수계 이민으로 꼽힌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불평등한’ 기회의 땅이며 이번 연방대법 판결에 반대했던 소니아 소토아요르 대법관의 지적처럼 “인종은 여전히 미국사회의 문제점”이다. 그 ‘인종’ 속에는 아시안도 포함되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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