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의 ‘큰 돈(big money)’은 제한해야할 부패의 도구일까, 보호받아야할 표현의 수단일까.
수십년 동안 연방의회는 정치에 흘러드는 거액의 위험한 영향력을 규제하려고 노력해왔고, 지난 몇 년 보수로 정착한 연방대법원은 이 같은 규제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왔다.
미국을 뒤흔든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거액이 오가는 부패를 막기 위한 선거기부금 제한정책은 계속 강화되었다. 1971년 통과된 연방선거자금법은 1976년 연방대법원에서 핵심조항 합헌판결을 받아냈고, 2002년엔 기업과 단체의 헌금을 규제한 초당적 캠페인개혁법도 통과되었다. 부패에 강력한 처방을 촉구하는 거센 여론을 의식하며 정당과 후보들도 반격을 자제했다.
그러나 기부액 제한법을 둘러싼 위헌논란은 입법초기부터 제기되었었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워터게이트의 기억이 차츰 퇴색해가는 세월동안 연방대법원도 “정치적 기부는 자유로운 의견표현의 한 형태다”라고 해석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보수파가 5대4로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버츠의 보수 대법원이 제한규제에 첫 칼날을 겨눈 것은 4년 전이었다. ‘시민연합’ 소송에서 기업과 특정 이해단체에도 사람과 똑같이 표현자유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시, 기업과 노조의 선거후원금 제한을 폐지하고 사실상 무제한 기부를 허용했다. 그 결과는 2010년과 2012년 두 번의 연방선거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기업과 이해단체에서 쏟아 부은 수백만 달러로 무장한 수퍼팩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 초유의 ‘돈 선거’였다.
지난주 대법원은 다시 제거의 칼날을 휘둘렀다. 이번엔 개인 기부가의 ‘표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앨라배마의 사업가 션 맥커천과 공화당 전국위가 연방선관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으로 개인이 매 2년마다 연방선거 캠페인에 직접 줄 수 있는 기부금의 총액을 12만3200달러로 제한한 현행법에 대한 도전이다. 한 후보 당 예선과 본선에서 각각 2600달러씩, 여러 후보에게 할 수 있지만 총 4만8600달러를 넘어선 안 되며 정당과 정치위원회에 주는 기부금도 2년 동안 7만460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16명 후보에게 기부를 한 맥커천은 12명의 후보를 더 후원하고 싶었는데 제한법에 걸려 못했다고 항의했고 대법원은 5대4 판결을 통해 개인의 기부금 총액 제한을 위헌으로 규정하며 맥커천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엔 한 후보에 대한 2600달러 기부금 상한선은 살려두었다. 그러나 이 제한에 대한 폐지 역시 이번 판결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민주주의에는 정치지도자 선출에 참여하는 권리보다 더 기본적 권리는 없다”고 판결문 서두에서 강조했지만 반대소견을 쓴 진보파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초래할 돈 선거의 부작용, 소수 거액 기부가들의 영향력 증대를 우려했다 : “연방대법원은 지난번 시민연합 판결을 통해 빗장을 풀어주었고 이번 판결로 수문을 열어주었다…돈이 지배하는 곳에선 다수의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의 선거판엔 돈이 넘쳐난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의 선거는 거의 무제한의 돈 싸움이 될 것이다. 2012년 사상 최고인 70억달러를 기록했던 선거자금 지출은 2016년엔 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 현행 개인 기부총액 상한선 12만3200달러도 대부분 미국인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거액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을 정치후원금으로 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이번 판결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부가는 얼마나 될까? 2012년 선거의 경우 646명에 불과했다. 이정도 극소수 부유층이 거의 무제한으로 후원금을 줄 수 있는 합법적 길이 열린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기부와 대가가 구체적으로 오가는 뇌물이 아닌 이상 부패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과연 그럴까. 이번 판결이후 한 개인이 한 선거에서 기부할 수 있는 돈은 한 정당만 후원해도 360만달러에 달한다.
선거후원금은 자선기부가 아니다. 거액을 기부했다면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가와의 친분, 그리고 정책수립의 영향력을 얻으려고 지불한 돈이다. “이제 기부가들은 미국정치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들일 준비도 되어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예상되는 긍정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돈과 표현을 동일시’한 대법원 판결 번복을 위해 진보일각에서 추진 중인 헌법수정은 실현이 힘든 몽상으로 간주되지만 온라인 통한 기부내역 신속 공개 등 자금의 투명화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대법원의 가는 길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는지, 탐욕스런 소수에게 영향력의 고삐를 넘겨주며 민주주의를 파괴해가고 있는지…2014년과 2016년 두번의 선거가 그 첫 평가를 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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