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 여류화가 김순련의 `무도회의 수첩’
▶ 작년 7월 타계하기까지 평생 붓을 놓지 않았으며, 우리 미술사와 삶 이야기 본보 칼럼을 빛냈던 고인, 그림 함께 실려 더 소중
‘무도회의 수첩’(글·그림 김순련). 이 한 권의 책은 내게 특별한 감동과 의미가 있는 책이다. 미주 한인화가들 중에 도라 김순련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작년 7월 타계하신 고 김순련 선생은 이화여대 미대 1회 졸업생인 미술계의 어른이며 원로로서 누구나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86세로 소천하기까지 평생 붓을 놓지 않았으며, 원로라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젊고, 경우 바르고, 도무지 요즘 사람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소명과 역사의식을 가진 멋진 노인이었다.
언젠가부터 개인적인 친분을 맺게 되어 찾아뵙던 중 이 분의 글 솜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격변기 한국에서 화가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보물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 신문에 고정 칼럼을 만들어 드릴테니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워낙 겸손하셔서 처음엔 고사했지만 자꾸 조르고 설득하여 한 달에 한 꼭지씩 받을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여성면에, 나중에는 문화면으로 자리를 옮겨 ‘그림의 추억’이란 문패를 달고 계속된 도라 선생의 칼럼은 어찌나 세련되고 삼빡하고 맛깔스럽던지, 금새 독자 팬들이 생겨나 심심찮게 선생의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자칫 구질스러울 수 있는 시절의 이야기-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6.25 등 파란만장했던 시기를 거쳐온 개인의 체험들이 선생의 재미있는 미술 이야기와 엮이면 신선하고 특별한 칼럼이 되었다.
“나 이제 더 이상 못 쓸 거 같아”하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라 김순련의 글을 되도록 많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가졌던 나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계속 쓰셔서 아무도 모르게 묻힌 한국 초기의 서양 미술사를 알려야 한다고 격려하고 채근했다. 건강이 워낙 안 좋으셔서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일까 하는 걱정을 한 적도 사실 많았다.
원고는 선생님이 예쁜 편지지에 직접 손으로 쓰셔서 매번 우편으로 보내왔다. 하루라도 마감에 늦을까봐 반드시 전화로 확인하셨고, 두어번 우송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때는 직접 올림픽과 후버의 선생님 아파트로 달려가 받아오기도 했다.
사실 다들 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하고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오는 시대에, 손으로 쓴 원고를 우편으로 받아서 한글자 한글자 자판을 두드리며 칼럼을 마감하는 일이 그렇게 한가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휴가 때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가면 반드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009년 12월23일자 ‘외로운 화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마지막 글이었다. “평생 화가라는 딱지를 달고 살면서도 마음에 드는 내 작품 한점 못 가진 나는 외롭다”라고 쓴 것이 마지막 문장이다. 그 이후 선생님은 몇 년 병석에 계셨고, 딸 김유경씨의 집으로 들어간 이후엔 연락을 끊은 채 조용히 그러나 행복하게 마지막 날들을 보내셨다고 한다.
‘이화여대 미대 1회생 도라 킴의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책 ‘무도회의 수첩’을 보는 나의 마음은 누구와도 다르다. 책에 실린 70편의 에세이 중 아마도 절반 이상이 그렇게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글마다 함께 실린 그림들이다. 선생님 작품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 보는 작품들이 너무 많고, 세상에 이런 그림도 그리셨구나 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 많다. 그림을 보는 재미가 글 읽는 재미만큼이나 큰 책이다. 특히나 고인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고인은 책 곳곳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인 김활란 박사가 대표적인 친일파 인사로 분류된 데 대해 항변한다. 또 운보 김기창 화백과 우향 박래현 선생의 연애담을 비롯해 김인승, 천경자 등 한국 화단을 이끈 화가들과의 인연과 에피소드도 담았다. 그리고 ‘삼류 화가의 변’이란 제목의 글에서 고인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썼다.
"평생을 화가라는 이름을 달고 다녔는데 번듯한 대작 한 점 남기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어줍지 못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두고두고 정부 창고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500호짜리 작품이 있다면, 대작을 남겼노라고 만족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책 머리에 소개된 김순련 화백의 약력을 옮겨본다.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 1기 졸업생으로 한국 화단의 중진으로 활동하던 김 화백은 1972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그곳에서 창작생활을 지속해 왔다. 따뜻한 가슴, 따뜻한 색감으로 새와 꽃, 풍경 등 자연을 즐겨 그려 ‘새와 꽃의 화가’로도 불린 김 화백은 여학사협회 창단 회원, 녹미회 회장, 목우회 이사로 활동한 한국의 1세대 여류화가였다. 1960년 국립중앙공보관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여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나무와 숲. 348쪽. 책은 코리아타운 플라자 내 정음사에서 살 수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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