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진 목사(좋은 감리교회)
2006년 1월 어느 날, 한국 영락교회의 한 젊은 성도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장례식장은 4000여명의 조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의 장례식 후 이렇게 많은 조문객은 처음이었습니다.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 모두 그의 영정 앞에서 흐느껴 울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을 계기로 그 청년의 삶이 조명 받게 되었고, 몇 년 후 [그 청년 바보의사], [그 청년 바보의사, 그가 사랑한 것들] 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33세의 나이에 유행성 출혈열로 세상을 떠난 고 안수현 씨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청년 의사의 영정사진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청년의사가 근무하던 병원 앞에서 구두를 닦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구두 닦을 일이 없으면서도 괜히 와서 구두를 닦고 필요 없이 돈을 더 많이 주고, 내 손을 만지면서 ‘할아버지, 춥지 않습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할아버지, 외로우시면 하나님 믿으세요.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사랑하시거든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나를 붙들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던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의 세탁부입니다. 내가 세탁 카트를 끌고 갈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지만, 이 청년의사는 나를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아주머니, 천천히 하셔도 돼요. 요즘 얼굴이 안 좋으시네요. 어디 아프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약도 갖다 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었습니다.”>
<근무하던 병원에 어린 환자가 입원했는데 그 환자가 퇴원하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환자는 집안사정 때문에 몰래 퇴원해버렸습니다. 차트를 찾아서 그 어린 환자가 살고 있는 지방의 집을 확인한 다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선물 꾸러미를 사 들고 지방까지 갔다 오는 바보 같은 의사였습니다.>
<병원에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환자의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다른 의사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까지 환자들의 곁을 지키던 바보 같은 의사였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다른 이들을 돕는데 썼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은행계좌에는 자동차 할부금을 제하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았던 고 안수현 씨, 그의 이야기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세대 속에서, 나보다 남을 위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와 의미임을 몸으로 외쳤던, 이 시대의 소리 없는 외침이었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그 역시 33세의 나이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밀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고 안수현 씨의 이야기를 접하며 성경의 가르침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자족과 성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혹 혼란스러워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 스스로 만족하라는 가르침과, 열심을 품고 성실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쉽게 조화되어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족하면 성실할 필요가 없고, 성실히 살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자족한다는 이유로 더 이상 삶의 목표와 열정이 없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자족의 믿음이 삶의 게으름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이는 성실의 이름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고 높은 학위를 따도 또 다른 욕심이 생겨납니다. 바쁘게 애쓰며 살아가지만 삶의 기쁨이 없습니다. 성실의 믿음이 끊임없는 욕심으로 나타납니다.
정말 자족하며 성실할 수 있을까요? 자족과 성실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데서 그런 삶은 가능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족은 내 자신을 위한 삶의 가치이며, 성실은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의 가치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내가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의 부분에서는 항상 주어진 것에 스스로 만족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굶주리고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을 생각한다면 성실해야 합니다. 결코 게으르지 말고 스스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자족과 성실의 경우가 뒤바뀔 때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데 다른 이들을 위해서는 스스로 만족해 버리고 더 이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자족과 성실의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한 삶의 목표를 세우게 되면 자족과 성실의 관계가 이해됩니다. 자족이라는 기름진 땅에 성실이라는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나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수많은 지친 영혼들이 쉬어갈 수 있는 큰 나무가 됩니다.
자족하십시다. 내게 주신 환경에 만족하며 감사하십시다. 성실하십시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소망의 끈을 전해 주기를 위해 결코 게으르지 말고 최선의 삶을 살아가십니다. 그 바보 청년의사와 같이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이 자족과 성실의 삶을 시작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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