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 성경 속에 드러난 오류
▶ ‘인간의 짐꾼’ 활용은 수세기 이후부터 가능해져, 후대가 잘못 기록한 듯… 신약에선 제대로 묘사
성경에는 낙타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늙은 청지기가 이삭의 신붓감을 데려오기 위해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삭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문제는 당시 낙타가 사람이 탈 수 있을 만큼 길들여진 가축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성서학자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을 거쳐 야곱과 요셉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4대 원조’가 살았던 시기를 기원 전 2000년대의 전반기 어디쯤으로 추정한다. 그 시기에 낙타는 인간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야생상태의 들짐승이었다. 사람들과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친근한 가축이 아니라,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줄 사냥감에 불과했다.‘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광야의 짐꾼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고학자들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오류의 책’이라는 성서에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사실이 끼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낸 시대착오는 ‘말씀’의 오류가 아니다. 단지 성서가 수세기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이 그보다 훨씬 뒤에 글로 옮겨졌음을 시사하는 증거일 뿐이다.
창세기에 낙타를 가축으로 묘사된 것이 착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선봉에는 이스라엘의 성서학자 노암 미즈라히 박사와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 에레즈 벤-요제프와 리다르사피르-헨이 서있다.
특히 이들 ‘3인방’ 가운데 ‘창세기의 낙타’가 ‘8월의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던 벤-요제프와 사피르-헨은 그들의 ‘믿음’을 뒷받침할 물증인 낙타 뼈의 화석을 찾아내기 위해 고대 구리광산과 제련소가 있었던 이스라엘의 아라바 밸리와 요르단 소재 와디 피난의 퇴적층을 파헤쳤다.
광산이 위치했던 지역이라면 무거운 원석과 제련을 거친 구리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가축이 동원됐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에 낙타가 처음 등장한 시기와 이들이 가축으로 길들여진 연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퇴적층에는 시대의 흔적이 화석으로 보존되어 있다. 물론 퇴적층의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화석의 생성연대는 뒷걸음질을 친다. 신석기 시대의 퇴적층이 구석기 시대의 퇴적층 위쪽에 위치하는 식이다.
두 고고학자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고대 광산의 퇴적층에서 수집한 낙타의 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기원 전 10세기 후반부의 화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시기는 구약에 등장하는 4명의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던 때로부터 수세기, 다윗 왕국이 세워진 때를 기점으로 수십 년 뒤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노종이 낙타를 타고 주인 아들인 이삭의 신붓감이 찾으러 갔다는 구약의 기록은 시대적으로 정확한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여기서 대두되는 한 가지 궁금증은 고대 광산 퇴적층에서 발견된 낙타의 뼈 가운데 야생낙타의 것과 가축 낙타의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한 벤-요제프 박사의 설명은 명쾌하다. 야생 상태의 낙타와 길들여진 낙타를 구분하는 비밀은 다리뼈에 숨어 있다.
가축으로 길들여진 낙타는 늘 무거운 짐을 져야 했기 때문에 다리에 그 노고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다. 다리뼈의 생김새와 상태가 야생 낙타의 그것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얘기다.
맹수와 인간의 사냥감에서 가축으로 지위가 바뀐 낙타는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았지만 새로운 ‘사명 감당’을 위해 다리뼈가 휘도록 수고해야 했다.
벤-요제프와 사피르-헨 등 두 명의 고고학자는 중동에서 낙타가 최초로 가축의 반열에 든 지역으로 이스라엘의 라바 밸리와 경계를 맞댄 아라비아 반도를 지목했다.
그곳에서 구리 원석 채굴에 주력했던 이집트인들이 온순하면서도 강한 지구력을 보유한 낙타를 길들여 지상 최고의 운송수단으로 탈바꿈시켰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 이전에 이 지역의 대표적 ‘등짐 동물’은 노새와 나귀였다. 그러나 낙타가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짐꾼으로 급부상하면서 중동 지역은 혁명적인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벤-요제프 박사는 “낙타의 등장으로 사상최초로 중동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원거리 교역이 가능하게 됐고, 아라비아와의 향유 무역도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노새나 나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뼈 속까지 바싹 말리는 건조한 열사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수를 제공하는 중간 휴게소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노새와 나귀에 의지해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이동해 가며 보이지 않는 사막의 길을 건너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낙타라는 든든한 동행이 생기면서 사막여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늘 우는 것처럼 항상 눈에 물기가 고여 있다. 낙타의 눈물은 건조한 사막을 비교적 수월하게 건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텔아비브 대학의 성서학 교수 미즈라히 박사에 따르면 낙타는 기원 전 7세기께 이스라엘과 중동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와 인도로 가는 장거리 여행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미즈라히 박사는 고고학자들의 이번 발견을 근거로 성서의 내용이 역사적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성급한 결론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기 예수 탄생 후 동방박사 3인이 낙타를 타고 경배를 드리러 찾아 왔다는 신약성경의 내용에는 시대착오적인 오류가 없다고 밝혔다. 그 당시에 낙타는 이미 듬직한 인간이 발이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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