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길 목사 (보스턴한인교회)
보스턴의 매력은 사계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계절마다 특유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보스턴의 겨울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천지를 하얗게 장식하는 설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눈이 온 다음날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설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오곤 합니다. 그 전날 눈을 뚫고 헤쳐 나온 것이 얼마나 통쾌한지를 체험하게도 됩니다.
올해도 벌써 여러 차례 눈이 내렸습니다. 사실 보스턴에는 폭설이 자주 와서 좀 눈을 반기지 않기 십상이지만 눈이 그친 후의 설경을 생각하면 그래도 눈은 사랑하고픈 대상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설경에 도취하다가 잠시 정신이 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1800년도 말에 버몬트(Vermont)에 살았던 윌슨 벤틀리(Wilson Bentley)라는 사람입니다. 후에 별명이 붙어서 윌슨 스노우플래이트 벤틀리(Wilson Snowflake Bentley)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눈송이(snowflake)를 사랑했습니다.
눈 폭풍이 오면 사람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 꼼짝 안 하는데 윌슨은 도리어 밖에 나가서 눈송이를 채취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눈이 녹기 전에 사진을 찍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무려 50년 동안 합니다. 끝내 5,381개의 눈송이를 찍은 사진 책까지 발간합니다.
얼마나 눈을 사랑하였었는지 눈 사진을 찍기 위해 눈 속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그토록 많은 눈송이를 사진에 담은 이유가 있습니다. 눈송이 하나하나에 담겨져 있는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작품이 그냥 녹아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 하나하나는 전무후무한 작품인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땅에 내려앉는 모든 눈송이 하나하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을 안고 찾아 온 귀한 손님임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작품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윌슨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면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합니다. 윌슨과 같은 사람을 만난 눈송이들은 정말로 행복한 눈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동안 눈이 되어 내려앉았는데 자기의 아름다움이 사진으로 남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아니 거의 모든 눈송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누지 못하고 다시 물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특히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울 때는 작은 연민도 갖게 됩니다. 윌슨을 만나지 못했기에 쓰레기 취급을 당하면서 삽에 들리어 멀리 버려지니 말입니다.
어느덧 인생은 눈과 같다는 생각에 젖어 봅니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안고 이 땅을 찾아 왔지만 어떤 인생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펼치다가 사라집니다. 어떤 인생은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인생을 눈과 비교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얼마 전 맥스 루케이도가 쓴 책에서 인생은 핼리 혜성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 글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 꼭 들어서 저는 밑줄도 긋고 마음에 담아 놓았었습니다.
헬리혜성은 밤하늘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뽐내면서 지나갑니다. 한편 핼리 혜성은 한번 오면 또 다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정확히는 76년 만에 다시 나타납니다. 많은 분들에게는 한번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니 또 다시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핼리 혜성을 일평생 한번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이 땅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인생은 맥스 루케이도의 말처럼 핼리 혜성과 같은 존재일 뿐 아니라 눈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얀 핼리 혜성.’ 이번 겨울에 든 생각입니다.
모든 인생은 눈처럼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안고 있습니다. 한편 모든 인생은 혜성처럼 왔다가 갑니다. 그러니 하얀 핼리 혜성입니다.
사실 저는 핼리 혜성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핼리 혜성은 76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꼭 보리라.” 계산해 보니 제가 33살 때 핼리 혜성이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핼리 혜성은 지난 1986년 2월 9일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2061년도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저는 게으름 때문이겠지만 지난번 나타난다는 뉴스는 들었지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저는 핼리 혜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셔서 제가 107세까지 산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 저처럼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정작 핼리 혜성이 왔을 때는 세상살이에 정신을 쏟다가 평생 한번만의 기회를 저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점점 더 지구에서 멀리 날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를 외면한 사람들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더 좋은 계기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핼리 혜성을 외면한 것이 교훈이 되어서 이제는 주위를 찾아오는 다른 핼리 혜성 곧 하얀 핼리 혜성을 성심껏 맞이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계기로 삼는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얀 핼리 혜성을 늘 반기며 사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하루 두 차례 아프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교우님들이지만 가족과 지인들 중에 편찮으신 분들의 이름까지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루에 두 차례 매일 기도를 드린다면 좀 지겨워지기도 해야 하는데 참으로 신기합니다. 결코 지겹거나 힘든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찾아오신 하얀 핼리 혜성이십니다.
저희 교회는 미국 교단에 속해 있어서 좋으나 싫으나 타인종 특히 백인들과 영어로 회의를 해야 합니다. 저는 현재 저희 노회 이사회 이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회의 날이 되면 또 가서 영어로 회의할 생각을 하면 부담스런 마음이 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겨울의 눈을 바라보면서 바뀌었습니다. 눈이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나는 저들을 위한 하얀 핼리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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