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는 특정 민족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주요 박물관 3곳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관용의 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이다. 웨스트 LA에 위치한 이곳은 뉴욕에 있는 톨러런스센터(Tolerancenter)와 함께 나치 독일에 의해 저질러진 유태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생생한 역사와 기록을 간직한 세계적 본산이다.
LA 관용의 박물관에는 ‘사이먼 위젠탈 센터 박물관’이라는 또 다른 명칭이 붙어 있다. 박물관이 추구하는 정신의 중추에 자리하고 있는 사이먼 위젠탈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태계 인권운동가인 위젠탈은 ‘나치 헌터’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08년 우크라이나 부카크라는 마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건축가의 꿈을 키우던 그는 나치 독일이 전 유럽을 광기로 몰고 갔던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아내를 포함 일가족이 나치의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중 위젠탈과 아내만 천신만고 끝에 학살을 피해 수용소 탈출에 성공했고 다른 일가족은 모두 나치 독일군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는데 그 수가 98명이나 됐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일가족과 동족이 당한 치 떨리는 만행을 목도한 위젠탈은 전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홀로코스트 기록들을 찾아내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나치 전범들을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데 일생을 헌신했다. 그가 끈질기게 추적해 색출한 나치 전범들이 1,100명이나 됐고, 나치의 유럽내 유태인 대학살 계획을 수립한 장본인인 아돌프 아이크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찾아내 이스라엘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한 게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지난 2005년 별세한 위젠탈은 생전 왜 나치 추적자가 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저세상에 가면 수용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들이 ‘너는 무엇을 했나’라고 묻지 않겠소. 이에 누군가는 ‘보석상을 했소’ ‘집을 지었소’ 등등의 대답을 하겠지만, 나는 ‘당신을 잊지 않았소’라고 말할 것이요.”이같은 그의 정신을 기려 사이먼 위젠탈 센터가 세워진 게 1977년이고 이어 1983년 관용의 박물관이 같은 자리에 문을 연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유태인의 힘은 이처럼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데서 나온다는 평가다.
미국내 일본계와 중국계 이민사회도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못지않다. 2차대전 당시 역시 수용소 경험이 있는 미국내 일본계 커뮤니티에서 상공인들과 참전 재향군인들이 주축이 돼 이민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을 세울 노력이 시작된 게 1982년이었고, 그 결실로 1992년 문을 연 것이 LA 다운타운 리틀 도쿄에 있는 일미박물관이다.
당시 일본계의 모금 운동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물론 전국에서 5만명 가까운 일반인들이 참여했고, 그 액수도 4,500만달러에 달했다고 하니 그 결집력이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중미박물관이 지난 2003년 문을 열기까지는 20여년에 걸친 중국계 커뮤니티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비추어 이민 역사가 111년째에 접어든 한인 이민사회도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고유의 박물관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현재 LA 한인타운에 건립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은 이에 정확히 부합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그 청사진과 설계를 완료하고 건립에 필요한 500만달러 예산을 모으는 단계에 있다.
위젠탈은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과거를 기억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관용의 박물관은 그의 말처럼 유태계의 위상과 권익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미박물관도 완성되면 ‘코리안’과 ‘코리안 아메리칸’의 위상을 높이고 권리를 찾기 위해 조직하고 움직이는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박물관 프로젝트가 순조로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인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수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한미박물관이 한인의 역사와 뿌리를 간직하면서 미래로 뻗어나가는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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