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동주택 HOA 규정 주의할 점
▶ 고작 밀린 액수 288달러 안 냈다고… `규정대로’ 집행에 집주인 하소연도 못해, 일부 HOA 주민 위 군림·부실운영 많아
주택소유주협회인 ‘HOA’ 관리비 288달러를 안 냈다가 집을 협회 측에 차압당한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 규정상 협회 측에 관리비 연체 주택을 차압할 권한이 있지만 너무 심한 조치였다는 비판도 거세다. 최근 예산 적자에 허덕이는 HOA가 늘면서 주민의 쾌적한 생활환경 보호라는 당초 설립 취지와는 반대로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HOA가 늘고 있어 관련 폐해도 증가 추세다. 다수의 주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HOA 규정이 일부 개인 주민에게는 독이 될 수 있어 주택 구입 전 HOA 관련 규정을 꼼꼼히 검토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로이터 통신 부동산판에 최근 소개된 HOA 주택 차압사례와 일부 부실한 HOA의 실태를 알아본다.
■HOA 288달러 미납 후 차압 날벼락
흔히 줄여서 ‘HOA’(Home Owner’sAssociation)로 불리는 ‘주택소유주협회’에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가 집을 차압당한 여성의 황당한 사연이 로이터 통신 부동산판에 소개됐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남가주는 물론 전국적으로 HOA의 적용을 받고 있는 주택이 크게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소식이다. 켄터키주 렉싱턴에 거주하는 잉그리드 보악(75)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마 조련사인 보악에게 단지 내 편의시설 수리비 명목으로 48달러(연간 비용)를 내라고 고지서가 날아왔지만 그녀는 나중에 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미뤘다. 직업 특성상 출장이 잦은 탓도 있지만 단지 내 시설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1년에 고작 48달러인 비용을 내지 않아도 별 탈 없겠지 하는 생각도 사실 있었다. 그러던 차에 출장지에서 이웃이 급하게 걸어온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보악의 집 앞에 집이 팔렸다는 ‘SOLD’ 간판이 내걸렸다는 것.
특별 수리비 48달러를 포함, 보악이 그동안 내야했던 관리비 총 288달러가 밀려 결국 집을 차압 처리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택이 소속된 단지 HOA 측의 설명이다. HOA 측에 따르면 그동안 보악에게 30여차례에 걸쳐 통보문을 발송했지만 적절한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관리비는 단지 내 소속 주택 소유주들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차압은 적절한 조치였다는 것이 HOA 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보악은 통보문을 받은 기억이 없고 사람을 통해 직접 전달받은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보악은 동독 출신인 아버지의 경험을 떠 올리며 “마치 공산국가에서 주택을 마음대로 회수하는 것과 같은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고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일단 거처가 필요한 보악은 어쩔 수 없이 월 900달러에 이미 차압된 자신의 집을 임대해야 하는 세입자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 HOA 옹호기관인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 인스티튜트는 “해당 협회의 차압 결정은 마지막 보루였을 것”이라며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 단지에서 관리비 미납부 가구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HOA, 관리비 연체 때 차압권 부여
HOA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70년대다. 주택 개발붐이 일던 당시 지방 자치단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시설 관리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겠다는 취지가 HOA 탄생 이유다. 도로수리 또는 관리, 길거리 조경, 가로등 관리 등을 HOA에게 맡기는 대신 세금혜택과 토지용도 변경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HOA 설립을 장려했다. 그 결과 70년대 당시 약 210만명에 불과하는 HOA 소속 인구가 현재는 30배가 넘는 약 6,300만명으로 급증했다. 신규주택의 경우 HOA에 소속되는 비율은 절대적으로 높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신규 주택구입자 5가구 중 4가구는 HOA에 소속된 주택을 구입하는 추세다.
HOA에 소속된 주택 소유주들의 반응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HOA 관련기관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HOA 소속 주택 소유주 중 약 70%가 HOA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HOA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HOA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내 주택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단지를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체육관, 클럽하우스 등 편의시설을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의 쾌적한 주거생활을 돕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HOA가 알게 모르게 주택 소유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HOA에 소속된 주택을 매매할 때 수십장에 달하는 규정이 함께 전달되는 데 이 규정에는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많이 포함된다. 공공을 위한 제약사항들이지만 일부 개인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내용도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주택구입 전 관련 규정을 철저히 검토해야 보악과 같은 황당한 경험을 피할 수 있다.
대부분의 HOA 규정에는 관리비가 수백달러만 연체돼도 법원이나 해당 주 규정에 따라 수십만달러에 달하는 주택을 대상으로 ‘유치권’(lien)을 설정할 수 있다. 마치 재산세나 모기지 페이먼트가 연체됐을 때 지방 자치단체나 은행이 압류조치를 밟는 것과 비슷한 규정이다.
■예산 부족한 HOA들의 꼼수
보악처럼 관리비 미납으로 주택을 차압당한 사례는 금융위기 이전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촉발된 대규모 주택차압 사태가 발생하면서부터 예산이 바닥나는 HOA이 부지기수로 늘기 시작했다. 차압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HOA 관리비를 내지 않는 가구가 급증하면서 예산이 부족해진 HOA도 늘어 부족한 예산마련을 위한 일부 HOA가 차압이라는 강수를 빼들기 시작한 것이다.
HOA의 예산수립과 운영 등을 돕는 기관인 어소시에이션 리저브에 따르면 현재 예산 부족난을 겪고 있는 HOA는 전체 중 약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전보다 약 13% 증가한 수치다. 대부분의 HOA는 공공시설 수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적립금 계좌를 두고 있는데 현재 적립금 비율은 평균 약 52% 수준으로 역시 10년 전에 비해 많이 내려간 것으로 어소시에이션 리저브의 조사에서 나타났다.
적립금 비율 부족은 HOA의 자금 배분이 적절치 못한 것이 이유라는 지적이다. 만약 건물 구조 결함이나 지반문제 등으로 대규모 공사비가 필요할 경우 결국 특별비용 명목으로 단지 내 주택 소유주들의 추가 관리비 부담으로 직결된다.
■경험 HOA 위원, 주민 애완견 DNA 검사비에 예산 집행
많은 HOA가 적자 예산에 허덕이는 가장 큰 원인은 협회를 운영하는 위원들의 경험 미숙이다. 수십만, 수백만달러의 예산을 집행하는 협회 운영위원들은 대부분 단지 내 주민들 중에서 선출하거나 지원자가 없으면 자원하는 방식으로 뽑기도 한다. 그런데 막대한 자금을 굴려야 하는 위치이지만 운영위원들에게 적절한 자격증을 요구하거나 회계관련 교육을 시키는 HOA는 거의 없다. 결국 관리비 미납 주택 소유주에게 적절치 못한 대응에 나섰다가 대규모 소송에서 지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기도 하고 예산을 전혀 엉뚱하게 사용하는 HOA까지 속출하고 있다.
메릴랜드주의 한 HOA는 주민의 멀쩡한 트럭을 견인했다가 소송에 휘말려 막대한 예산을 소송 관련비로 낭비하는가 하면 플로리다주의 한 HOA는 단지 내 애완견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에 나서는데 예산을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집행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플로리다 잭슨빌의 한 HOA는 예산낭비를 막겠다는 이유로 단지 내 견분 수거업체와의 서비스 계약을 해지했다. 대신 애완견 주인들에게 견분 수거 의무를 부과하고 애완견 유전자 검사비 명목으로 35달러씩을 부과했다. 견분 수거의무를 지키지 않는 주민을 찾아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이유인데 적발 때 벌금은 일일 100달러에 달하고 복수 적발 때에는 벌금이 1,000달러까지 인상되는 터무니없는 규정을 마련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처럼 일부 부적절하거나 무분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HOA를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가주 등 일부 주에서는 HOA 측이 주택 소유주와의 적절한 상의 절차 없이 관리비 인상을 금지토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바다주의 경우 주택 소유주들의 불평 등 민원을 처리해 주는 ‘옴부즈맨’ 제도를 신설해 HOA의 횡포를 막고 있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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