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새해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다. 2014년 첫 입법과제로 내놓은 장기실업수당 연장안이 ‘예상을 깨고’ 연방의회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상원이 7일 실시한 3개월 연장안 토론종결 표결의 결과는 찬성 60표 대 반대 37표, 무려 6명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사안의 본질로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요즘처럼 양극화된 워싱턴에선 ‘뉴스’가 될 만하다고 진보미디어들은 자축한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상원의 최종표결도 남았고 반대기세 역력한 하원의 높은 장벽도 버티고 있다. 당장 공화당이 지지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수당지급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난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국의 실업자들이 각 주에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실직 26주까지 만이다. 그러나 현재 실업인구 1천여만명중 6개월 이상 취업을 못하고 있는 장기실업자는 37%에 달한다. 2008년 경제가 무너지고 실업률이 악화되었을 때 연방의회가 마련한 긴급지원프로그램이 실직 26주가 넘는 구직자들을 돕는 장기실업수당이었다. 최고 99주까지 지급하다가 현재는 각 주의 실업률에 따라 73주에서 43주로 축소되었다.
지급액은 마지막 봉급의 절반 정도로 평균 주 300달러, 대부분 실직가정엔 최저 생계를 지탱해주는 생명선이다. 실업수당 연장안은 지난연말 예산안 타협과정에서 공화당이 조금만 ‘온정적 보수’를 지향했다면 새해까지 끌고 올 과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공화당의 반대로 연방의회는 실업수당을 예산안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연말휴가를 떠나 버렸고 크리스마스 직후 130만 명의 실업자에겐 이 생명선이 끊겨버렸다.
매니저로 일하던 비즈니스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한 오하이오의 한 싱글 맘은 주 362달러의 수당이 “우리 가족에겐 겨울한파를 막아줄 지붕이고 난로였다”고 호소한다. 장기간 실업에 저축과 은퇴연금은 벌써 바닥나고 집 잃고 아파트로 옮긴지 오래인데 ‘자격미달’ ‘자격과잉’ 등 온갖 이유로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장기실업자들의 눈은 요즘 온통 워싱턴에 쏠려있다.
여론의 55%도 실업수당 연장을 지지한다. 당장은 130만 명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상당수 미국인들이 “내게도 닥친다면…” 실직을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장안이 부결된다면 금년 말엔 수당을 못 받는 실직자들이 49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오바마 행정부는 추산한다.
장기실업수당 연장안은 표면상으론 경기회복의 그늘에서 고군분투하는 130만 명을 구하기 위한 시급한 민생법안이다. 그러나 물밑을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CNN의 표현대로 11월 중간선거 캠페인 이슈를 주도하려는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적 대결이다.
금년 선거를 통해 상원 다수당을 꿈꾸는 공화당은 인기 없는 오바마케어를 계속 공격하며 중심테마로 끌어가기 원하고 민주당은 중산층 이하 표밭을 겨냥, 심화되는 소득불균형을 부각시켜 캠페인 주제를 바꾸려 한다. 실업수당 연장은 앞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부유층 탈세방지 조세개혁으로 이어질 민주당의 서민 살리기 정책의 선두 과제인 셈이다.
실직수당 연장을 반대하는 공화당의 이유는 궁색하다. 가장 강조하는 ‘적자 우려’도 감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좀 설득력이 약한데 일부 강경파는 수당을 계속 주면 실직자들이 일자리 찾는데 게을러진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들 자신도 실직자가 되어보아야 한다”는 질책 받아 마땅하다. 다행히 경제학자들은, 드물게도 진보와 보수가 이구동성으로 실직수당 연장을 지지하며 장기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민생을 외면하기 힘든 중도파와 적자해소를 지상과제로 고수하는 강경파가 충돌 중인 공화당의 내분을 기회삼아 민주당은 민생 캠페인의 윈윈전략을 자신한다. 연장안이 통과되면 성공을 모멘텀 삼아 보다 적극적인 서민의 수호자로 나설 것이고, 부결되면 “냉담한 공화당 탓”이라는 정치적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은 민주당에게도 안전하기만 한 이슈는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 프레임을 정할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클레어몬트 매키나대학의 존 피트니 교수는 경고한다. “중산층의 부를 저소득층에게 재분배하는 것으로 유권자에게 느껴지는 순간 민주당에게 재앙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수당 연장안 상원 최종표결을 앞두고 양당 지도부는 재원마련을 둘러싼 기싸움에 돌입했다. 오바마케어 개인가입 의무화 연기, 불법체류자 자녀 택스 크레딧 청구 폐지 등 공화당의 재원 마련 제안은 단번에 거부당했고 민주당 내부에선 “긴급지원에 왜 재원을 따로 마련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치 싸움의 와중에서 수백만 실직자들의 가느다란 생명선이 제발 끊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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