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로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참사 1주기를 맞는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남짓 앞둔 겨울 아침, 코네티컷 주 평화로운 소도시 뉴타운의 1학년 교실에서 6살, 7살 작은 아이들 20명이 선생님들과 함께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하고 나서 1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국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재앙을 당한 듯 최소한의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그저 필연적일 다음 ‘재앙’을 불안해하고 있을 뿐이다.
여론도 퇴색했다. 1년 전 들끓었던 총기규제 강화촉구 보이스는 점점 잦아들더니 이달 초 CNN조사에선 50% 대 49%로 규제강화 반대가 지지를 넘어섰다.
샌디훅 이후 어제까지 희생자 1만1,405명, 미국의 잦은 총기살인 발생의 원인은 다각도로 거론되어 왔다. 손쉬운 총기구입, 방치된 정신질환, 폭력적 대중문화…지난 주말 CNN이 샌디훅 1주년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총기규제 현황을 취재하며 이 원인들을 짚어 보았다 :인구당 정신질환자의 비율은 각국 대부분이 엇비슷했다. 총기소유는 예멘과 미국다음으로 스위스가 높았다. 비디오게임 등 폭력적 대중문화 취향은 일본이 단연 강했다. 그러나 지난 한해 단 4명만 총기로 살해당한 일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 사격훈련을 받는 스위스도 총기사건 발생율은 미국보다 훨씬 낮았다. 왜? 총기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이 만34세까지는 직장에서 일하며 일반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민병대인 스위스에선 총기관련 전면적 신원조회와 함께 매매시 정부등록제가 의무화되어있고 자동소총은 판매금지다.
미국의 연방의회는 공격용 무기판매 금지는커녕 범죄자나 정신질환자는 어디에서도 총을 사지 못하도록 신원조회를 확대하자는 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번 주 테크놀로지 발달에 맞게 개정은 못한 채 플라스틱 총기규제법을 10년 더 연장하는데 성공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CNN 특집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들을, 특히 어린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모두 이 기본의무를 행하고 있다. 미국은 아니다. 가장 엄청난 비극은 그 방법을 알면서도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금년 초 오바마 대통령이 예정됐던 이민개혁을 뒤로 미루고 총기규제를 집권2기의 중심과제로 천명한 이후 한동안 총기논쟁은 뜨겁게 재연되었다. 부분적 효과에 그쳤지만 대통령 행정명령도 23개나 발효되었다. 낙선운동을 경고하는 막강한 총기로비의 위협에 주눅 들려 무기력해진 연방의회에 대한 기대를 접은 총기규제 캠페인은 각 주로 투쟁전선을 옮겼다.
지난 1년 전국 50개주 주의회에는 약 1,500개의 총기관련 법안이 상정되어 그중 109개가 입법화되었다. 규제강화는 39개, 나머지는 모두 총기협회가 지원한 규제완화 법안이었다.
규제강화와 완화는 각주의 이념성향에 따라 선명하게 갈렸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코네티컷 등은 신원조회 확대 등 총기규제강화법을 실현시켰다. 총기폭력예방 단체 브래디캠페인이 발표한 평가에서도 캘리포니아는 A마이너스를 받아 1위에 올랐으나 규제완화로 치달은 애리조나, 알래스카, 와이오밍 등 26개주는 낙제점을 받았다.
전국에서 과시된 총기협회의 파워에도 불구하고 총기폭력을 막으려는 풀뿌리운동은 지난 한해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그동안 돈 많은 총기로비와는 달리 근근이 유지해온 캠페인의 재정도 백만장자 전 뉴욕시장으로 ‘불법총기에 반대하는 시장들’이라는 단체를 이끄는 마이클 블룸버그가 적극 개입하면서 활기가 생겼다. 샌디훅 참사 바로 다음날 몇 명의 엄마들이 시작했던 풀뿌리 네트워크은 1년 만에 12만7,000명의 회원 단체로 성장했다. ‘미국의 총기인식 위한 행동 요구 엄마들’이다. 2011년 투산 총기난사사건으로 중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개브리엘 기퍼즈 전 하원의원도 총기규제 로비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연방의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2013년이 총기폭력예방의 분수령이라면서 “총기규제 캠페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길고 험한 여정이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샌디훅 참사 때 7살 아들 대니얼을 잃은 마크 바든도 좌절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문화를 바꾸려는 겁니다. 몇 달 아니, 몇 년도 부족하겠지요. 그러나 난 한 가지 이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 작은 대니얼을 위해 아빠가 할 일이니까요”‘…엄마들’과 ‘…시장들’, 두 단체가 최근 샌디훅 1주기 TV광고 ‘더 이상 침묵은 없다(No More Silence)’를 선보였다.
2012년 12월14일 애덤 란자가 샌디훅에서 총기난사를 시작했던 무렵인 아침 9시35분, 광고는 재깍대는 시계소리 속에 학생들이 묵념하는 한 교실을 비추며 시작된다. 수상한 더플백을 든 한 사람이 학교로 들어오며 내레이터의 음성이 깔린다. “12월14일, 우리는 뉴타운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도 26개 학교에서 또 총기사건이 발생했다”고 전제한 후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지금 당장 미국에 필요한 것이 침묵입니까?”
연방의원들 뿐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미 국민 모두가 오는 토요일 아침 9시 35분 한번쯤 생각해볼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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