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목사(북부 보스턴 한인교회)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디든 가려고 할 때 생각난 곳이 산이었다. 몇 달 전에 등산을 즐기는 교우가 가볼 만한 산 이름을 적어 주었는데 아무데도 가지 못했다. 3년 전에 이사 올 때만 해도 등산갈 생각에 가슴이 설렜었다. 작년에는 산에 가려고 등산화까지 샀다. 그 동안 이 지역으로 이사 와서 산에 가지 않는 핑계를 많이 만들었는데 지난 월요일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득 찬 산이 나를 불러냈다. 머리를 식히려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마음속까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산에 혼자 갈까 아내와 같이 갈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혼자 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했다. 아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가겠단다. 혼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사진 모델도 필요하고 모처럼 아내와 같이 시간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내가 동행하기에 가장 가깝고 쉬운 코스를 택했다. 보스턴 남쪽에 있는 하이킹하기 알맞은 Blue Hills Reservation 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 가로수에는 단풍들이 한창이었고 잘 왔다고 우리 부부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하여 목적지에 도착해 산 입구에서 지도를 구해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 바로 앞에는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가 세 딸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걷는 것을 보니 산행하기 너무 쉬운 곳이었다. 좀 더 힘든 코스이면 더 재미가 있었겠지만 처음이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한 시간쯤 걸으니 벌써 정상이다. 산 위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과 풀들이 우리를 맞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은 반가워 소리라도 지르는 것 같았다. 곧 시들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걷다 보니 어떤 길은 낙엽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그 위를 걸으니 발밑에서는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한국에서 산에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산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내를 꼬여 가을에는 물론이고 온 세상이 눈에 덮여 있을 때도 산에 갔다. 그 때 산에서 깨달은 것이 참 많았다.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사람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성경 속에서 보다 산속에서 창조주가 계심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인생이 소꿉장난 같고 사소한 일로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산길을 걷다 사거리를 만났을 때 보니 나무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번호가 왜 나무에 붙어 있는지 몰랐다. 지도를 보니 지도에도 번호가 있었다. 걷는 사람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번호였다. 누가 생각해 냈는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내 인생길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까?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맞을까? 나의 인생의 여정에서도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23년 동안 195개국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 금년 44살인 캐나다인 마크 스펜서 브라운씨다. 그는 21살이던 1990년에 “미래를 고민하면서 전 세계 모두를 경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브라운씨가 세계 일주를 하는데 23년이 걸린 이유는 일반 여행객들과는 달리 현지인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 아일랜드에 머무는 그는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배낭을 싸고 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를 여행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지금 동부에서 여행 중인지 모른다.
지난 월요일 생각지도 않은 산행의 기회를 가졌지만 등산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산에 다녀온 후에 돌아보니 그곳에 간 의미가 여러 가지 있었다. 먼저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려는 절대자의 배려라고 믿는다. 지난 일은 빨리 잊는 것이 현명하다. 데일 카네기의 말을 빌린다면 “톱밥을 켜지 말라” 이다. 과거사는 과거로 묻으라는 말이다. 또한 오는 길에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분들을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와도 모처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산에 다녀와서 깨달은 것은 나는 쓸데없는 일로 고민하고 있고 세상을 만든 분은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에서 욥이 피부병으로 고생할 때 창조자에게 자기가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 때 대답 대신 절대자는 욥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38:4 & 5) 욥은 너무나 뻔 한 대답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누가 했는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의 산행은 일상을 벗어나려고 한 것이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여행 중인 순례자요, 나의 순례의 길에는 창조자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분은 대단히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도와주시는 분이다. 길을 가다 길을 잃어버려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행 도중에 비가 오고 눈이 올 때도 있지만 나는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고서 말이다. 가을 산아, 나를 불러 주어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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