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지방선거가 공화당에겐 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유리한 정치 환경에서도 선거 패배를 거듭하며 지쳐가는 공화당이 재기를 위한 두 가지 상반 전략의 효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티파티를 중심으로 한 극우강경파와 전통적 공화당 주류의 중도 온건파로 갈라져 맞서고 있는 두 노선의 대결장이었다.
요즘 민심의 소재를 점쳐보는 ‘정국의 풍향계“로 주목받았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공화당이 이길 수 있었고, 이겨야했던 선거”라고 USA투데이는 지적한다.
한때 확실한 공화당 지역이었던 버지니아에선 전통적으로 대통령과 같은 여당 주지사를 뽑지 않았다. 9번 연속 지켜온 전통이 이번에 깨진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테리 맥컬리프는 ‘뜨내기 출마자(carpetbagger)’로 불릴 만큼 버지니아와 연고도 빈약했고, 선출직 경험도 없었으며 오랜 기업가 경력에 관련된 일부 거래의혹도 채 규명되지 않은 허약한 후보였다.
그러나 공화당후보 켄 쿠치넬리 주 검찰총장은 맥컬리프에게 패했다. 티파티가 주도한 연방정부 셧다운이 결정적 패인으로 꼽혔고 낙태와 동성애, 기후변화, 이민 등 사회문제에서 선동적 극우보수인 쿠치넬리의 성향은 민주당에겐 안성맞춤의 공격목표가 되어 주었다. 쿠치넬리는 캠페인 초반부터 두 자리 숫자로 밀렸지만 그나마 선거 막바지에 오바마케어 시행이 총체적 난국을 드러내면서 승패는 2.5% 포인트의 아주 근소한 차이로 갈렸다.
대조적으로 민주당의 아성 뉴저지의 주지사 선거에선 공화당 크리스 크리스티가 가볍게 압승을 거두었다. 태풍의 피해복구를 위해선 민주당 대통령과도 손잡고, 동성결혼이나 낙태는 반대해도 포괄적 이민개혁은 적극 지지하는 그의 중도 실용주의가 개인적 인기에 더해 폭넓은 지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쯤 되면 공화당이 얻을 교훈은 자명하다 : “승리의 비결은 중도에 있다, 합리적 보수로 돌아가야 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달라진 게 없다. 공화당 내 티파티와 주류 기득권층은 여전히 맞선 상태로 각기의 노선이 옳다고 주장한다. 아니, 선거 전보다 오히려 더 팽팽해졌다.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공방도 쉽게 그칠 기세가 아니다. 이번 선거결과 분석을 통해 단합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2014년과 2016년 선거 승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데 단합은커녕 앞으로 선거에선 ‘공화당 대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대 공화당’ 싸움을 더 피 튀기게 치를 기세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내 양측이 이번 선거결과를 아전인수 격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극우강경파들은 셧다운의 영향 받은 공무원 30여만명이 거주하는 표밭에서, 공화지도부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한 쿠치넬리의 근소한 패배는 사실상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오바마케어에 대한 혐오와 보수에 대한 지지가 확실하게 드러난 결과라는 것,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이건의 말대로 창백한 파스텔 빛깔이 아닌 선명하고 강렬한 깃발을 올리는 공화당, 타협하지 않는 확실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며 중도파를 “선거에 질 때마다 포기하고 굴복하며 민주당을 흉내 내려는 무늬만 공화당”으로 매도한다.
주류 기득권층은 푸드스탬프를 삭감하거나 이민개혁안을 반대하는 대신 가난한 아이들을 먹이고 불안한 음지에서 숨죽이는 1,100만명 서류미비자에게 양지로 나오는 길을 열어주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되살려 공화당 진영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민표밭을 끌어안지 않으면 ‘공화당 백악관’은 영원히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보수 논객들도 응원한다.
티파티의 입장은 강경하다. 어차피 민주당이 될 이민표밭 확대보다는 그동안 기권해온 보수유권자 투표참여 독려가 훨씬 효과적이며 그러려면 보다 선명한 보수가치 옹호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요지부동 신념이다.
불과 몇 십 명 티파티 의원들의 입김이 이처럼 강한 것은 당 외곽에서 극우보수단체들이 돈과 표와 조직을 동원하는 막강한 지원 덕분이다. 이들 강경보수 단체들은 내년 선거를 겨냥, 이미 낙선시킬 공화당 현직의원 명단도 작성했다는 소식이다. 이 살생부엔 셧다운 해제 위한 최종협상안에 찬성표를 던진 온건파 114명 의원들의 이름이 올랐다.
온건파도 속수무책은 아니다. 티파티의 극단주의를 우려하는 보수 재계도 지원에 나섰다. 그 첫 대결이 지난주 앨라배마 주 연방하원의원 후보 공화당 경선이었다. 결과는 온건파의 승리였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다. 내년 상반기 내내 연방의원 공화 경선에서 계속될 것이다. 연방상원 공화당 서열 1위 미치 맥코넬 원내대표가 재출마하는 켄터키가 가장 조명을 받을 격전지다. 그가 무너진다면 공화당엔 지각변동이 일어날 테니까.
실패를 교훈삼아 재도약하는 것은 사람에게 뿐 아니라 정당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2008년에도, 2012년에도 선거 참패이후 갈림길에 서서 자기변화를 모색했던 공화당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지금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극단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 -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아웃사이더들에게는 훤히 보이는 바른 길이 인사이더들에게도 가닿으려면 아직 더 많은 패배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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