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렬 목사(나사렛사람의 교회)
아!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이겼다. 이 글을 삼 주 전에 처음 써 놓았을 때는 이제 막 보스턴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였다. 그런데 한 주간 한인회보 휴간을 하고 나니 그동안 레드삭스는 우승팀이 되었다. 지난 수요일 오후 8시, 시리즈를 결정지은 6차전이 팬웨이파크에서 시작될 때 나는 수요기도회를 인도하러 교회에 갔다.
기도회 후에 이어진 성경공부반까지 인도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7회였고 레드삭스는 경기를 어려움 없이 곧 끝내버렸다. 나의 야구에의 추억들에 한 가지가 더 늘어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대진표가 신문에 나오는 대로 방 벽에 오려 붙여 놓았다. 지역 야구명문인 인천고등학교나 동산고등학교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들고 나가 동네 형들과 같이 중계방송을 들었다. 전국의 모든 고교야구팀이 지역예선 없이 참가하는 봉황기 때는 아침부터 밤 까지 하루 다섯 경기가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렸다.
라디오 중계에서는 오늘도 환일고등학교 체육교사이신 하일성씨가 해설을 해주시겠다고 안내가 나왔다. 인천고와 청주세광고의 봉황기 경기를 보기 위해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꿈에 그리던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가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앞 경기에서 내 바로 앞 외야 펜스로 굴러오는 2루타 공을 열심히 쫒아오던 선린상고 우익수의 뻘겋게 상기된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 개교기념일 휴일에 인천고와 대구성광고의 황금사자배 경기를 보기 위해 혼자 동대문야구장을 찾아갔었다. 그 때 옆 자리 아저씨가 귤 알갱이가 들어있는 쌕쌕 음료수를 계속 사 마시며 내 옆에 빈 캔을 무수히 쌓아놓는 것을 신기하고 부럽게 바라봤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많은 학교 중에 인천고등학교에 추첨으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 앞으로 야구 볼 생각에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광주진흥고와의 대통령기 4강에서 9:7로 이긴 최고의 경기에서는 두 학교 동문들의 과열된 응원으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출동한 경찰들이 양쪽 사이를 갈라 앉아 있어야만 했었다. 대학시절과 신학교 시절 인천을 떠나 있었지만 항상 꼴찌에 가까운 연고 프로야구팀에 대해서도 나는 나의 응원의 정조를 버리지 않았다.
1995년 미국에 건너와서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처음 접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내가 살던 내쉬빌에서 지리적으로 그 나마 가까운 팀이라 주위의 여러 사람이 응원했지만 이제 미국에 와서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나에게는 낯선 팀이었다. 그나마 이제 막 뜨고 있던 LA 다저스 박찬호의 경기 내용은 학교 도서관에서 신문 스포츠 면에 나와 있는 전날 경기 기록을 통해 살펴보며 뒤늦은 환호만 혼자 보내곤 했었다.
보스턴에 와서는 팬웨이파크 바로 앞 켄모어 스퀘어에서 살았지만 레드삭스 야구를 보러가지는 못했는데 여전히 학교생활을 버텨 나가는데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야구를 아는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우리는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를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2003년의 뉴욕양키즈와의 가슴 아린 패배로 끝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시리즈 7차전, 그리고 2004년 마찬가지로 양키즈와 대결한 챔피언시리즈에서 3패 끝에 극적인 4연승이라는 믿지 못할 승리는 여전히 그 주요 상황들이 영화의 명장면처럼 내 속에 남아있다.
레드삭스가 2004년과 200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고 나니 전만큼 애절한 마음으로의 응원 자세는 사라져갔고 또 교회개척 초기에 아무래도 야구에 정신을 잃지 않아야했다. 올 시즌에도 그저 중간 중간 순위정도만 확인하고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지나왔지만 이제는 선수 이름도 많이 모르는 단계가 되었었다. 그러던 나에게 야구에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소식이 있었는데 바로 적팀이었던 뉴욕양키스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 소식이었다.
파나마 출신의 이 위대한 마무리 투수는 내가 미국에 온 1995년부터 시작해서 뉴욕에서 18년을 뛰었다. 보스턴이 한창 뉴욕과 라이벌전을 벌이면서도 주로 패배를 경험하던 시절, 컷패스트볼로 무장한 그가 경기 마지막 부분에 등판하여 너무도 침착하게 공을 던져대면 나는 질리고,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이는 그의 상대팀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리베라 때문에 많은 팀들이 패배의 쓴 경험을 했을 텐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에게 수많은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들과 선수들이 경의와 찬사를 표시했다. 양키스가 팬웨이 구장에서의 이번 시즌 마지막 시리즈를 위해 보스턴에 왔을 때도 레드삭스는 경기 전에 그를 그라운드로 초대하여 관중들, 그리고 레드삭스 선수들과 함께 경의를 표하는 시간을 갖고 팬웨이 야구장 관중석 의자를 선물로 주었다. 리베라는 야구선수로서 다섯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 월드시리즈 MVP,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등의 수많은 상과 기록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은퇴를 즈음해서 나오는 여러 일화들은 리베라가 단지 공을 잘 던진 야구선수였을 뿐 아니라 동료들과 다른 팀의 선수들 에게까지 다가가 그들을 이끌어주던 존경받는 멘토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국 파나마에서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수많은 자선프로그램과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돕는 자선 사업가였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리베라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데 그 이후 뉴욕과 파나마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그 자신 은퇴 이후에 구제사업의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고자 한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훌륭한 야구선수이며, 존경받는 인간, 헌신된 크리스천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는 올해 나에게 새로운 야구에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리베라는 양키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 9회 투아웃 상황에서 오랜 시절 그의 양키스 동료였던 노장 앤디 페티트와 데릭 지터의 안내를 받아 모든 사람들의 기립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때는 그렇게 냉혹해 보였던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 앤디 페티트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7절).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그라운드에서 때로는 값진 승리의 기쁨과, 힘든 패배의 아픔과, 고통의 슬럼프와, 영광의 순간들이 많이 교차하겠지만, 그 위에서 성실한 인간으로서의 삶, 믿음을 지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목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이 삶의 과정들에 동행하며 그렇게 더불어 살아간 사랑하는 가족들, 교우들, 친구들과 함께 얼싸안고 인생의 그라운드를 내려오기 전에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2004년에는 두 살 된 딸아이를 데리고 2007년에는 다섯 살 된 딸과 한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우승 퍼레이드를 보러 보스턴에 나갔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그것을 더 즐길 만큼 컸는데도 그만 나도 너무 컸는지 퍼레이드에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이 가을 나의 야구에의 추억은 더 늘어났다. 동갑내기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를 보며 나에게도 이 그라운드위의 소중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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