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10월에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만 30년이다. 그중 10여년은 원고지에 기사를 썼고 이후론 컴퓨터로 글을 써왔다. 그렇게 매일 자판을 두드리다보니 팔 근육에 무리가 됐는지 만성통증이 생겼다. 테니스 엘보 비슷한, 딱히 이름도 없는 직업병으로 몇 년째 고생이다.
치료차 한방 양방 물리치료 신경치료 스테로이드주사 안 해본 것 없이 돌아다니면서 알게된 것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직업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업에 필요한 행동과 자세를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굳어져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골프와 테니스 선수들이 한쪽 어깨 근육만 발달해 다른 쪽과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은 예다. 미용사와 간호사처럼 늘 서있는 직업은 하지정맥류를 가진 사람이 많고, 팔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돌처럼 굳은 어깨 통증을 호소한다. 셀폰과 아이패드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거북목 증후군이 흔한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수많은 직업병 중에서 가장 나를 놀래키는 것은 연주자들의 부상과 통증이다. 아마도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회에 자주 가고, 오케스트라를 가깝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론 우아해 보이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악기와의 사투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일면 굉장히 감동적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연습 도중 입은 손가락 인대 부상으로 5년이나 연주를 못하다가 최근 컴백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도 LA필하모닉 부임 초기에 지휘 도중 어깨 인대에 부상을 입고 포디움에서 내려온 적이 있고, 지난해 말러 전곡 사이클 때는 너무 많은 리허설과 연주 스케줄 때문에 나중에는 팔도 들지 못할 정도가 됐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날카로운 고음을 많이 내는 바이올린을 귀에 바짝 대고 연주하기 때문에 청각이상에 시달리거나, 고개를 외로 꼬고 연주하는 자세 탓에 한쪽 어깨가 올라가고 척추가 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이올린이 닿는 목 부분이 성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그의 왼쪽 턱 부분을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첼로를 부둥켜안고 연주하는 첼리스트들은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허리 디스크가 많고 악기가 닿는 가슴팍에 굳은살이 박히기도 한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더블베이스나, 엄청 무거운 튜바 연주자들이 겪는 애로는 말할 것도 없겠다.
손가락을 과도하게 쓰는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손의 힘줄을 싼 막에 생기는 건초염과 테니스 엘보가 고질병이고 손가락 부상으로 중도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피아노 신동이었던 카라얀도 건초염 때문에 지휘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가 목 디스크와 척추 부상, 왼손마비 때문에 활을 놓고 지휘봉을 들었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손목 부상이 잦은데다 박자를 놓치면 안된다는 긴장에 시달려 심장병 혹은 위장병에 걸리기도 한다. 타악기는 보통 때는 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치고 나와야하는데 숨죽이며 박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트럼펫이나 혼 등 관악기 연주자들은 호흡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폐에 많은 압력이 가해져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에 걸리기 쉽다. 기도가 점차 좁아져 호흡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연주자들의 직업병은 양악과 국악을 가리지 않는다. 한 가야금 연주자는 지문 인식이 어렵다고 한다. 지독한 연습으로 손가락 피부가 망가져 지문 형태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또 종일 엎드려 가야금을 연주하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도 좋지 않고 골반이 틀어지기도 한다. 대금 연주자들은 만성 목 디스크와 관절염을 달고 산다. 몸은 앞을 보지만 고개를 돌려 연주하다보니 목이 성할 리 없고, 또 대금은 기공의 간격이 넓어 손가락을 과도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관절염이 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토록 큰 기쁨을 주는 음악이 이런 고통과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은 직업병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직업은 신성하니 우리가 겪는 고통도 신성한 노동의 필연적 결과라 해야겠다. 내가 팔 아프게 쓰는 기사도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면 위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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