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리웃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28)가 1970년대 실존 포르노 배우로 등장, 화제를 모은 ‘러브레이스’(감독 롭 엡스타인·제프리 프리드먼)가 17일 개봉한다. 화제성에 비해 영화는 엉뚱한 구성과 진액을 빼놓은 듯한 전개로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잘 살리지 못했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려 했으나 실체에 제대로 다가서지도 못했고, 신선한 재해석을 해내지도 못했다. 1970년대식 누런 빛이 도는 컬러 화면을 그럴듯하게 살려내 마치 당시 찍은 듯 보이도록 무척 공을 들였으나, 좀 더 신경써야할 것은 내용의 실재성이다. 9일 개봉,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실존 피아니스트 리버라치를 다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쇼를 사랑한 남자’와 비교해보면 더더욱 실력차를 느끼게 된다.
타이틀롤 린다 러브레이스(1949~2002)는 1972년 발표된 하드코어 포르노영화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로 하루아침에 섹시 스타로 떠오른 포르노 여우다. 갈색머리에 주근깨 투성이 얼굴로 수수한 옆집 아가씨 같이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닌 그녀는 금발에 거대한 젖가슴으로 판타지를 자극하는 기존의 포르노 배우들과 구별되는 친근함으로 금세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자신의 예명 그대로 린다 러브레이스 역으로 출연한 ‘목구멍 깊숙이’가 포르노영화 최초로 코미디적 요소를 지난 장편 구성을 지닌데다가 상대적으로 꽤 캐릭터 개발이 잘된 덕으로 주류 영화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 큰 몫을 했다. 성적 권태감에 빠진 린다라는 여성이 의사를 찾아가 검진받은 결과 자신의 클리토리스가 목구멍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돼 구강성교로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고 특별한 오럴 테크닉으로 치료사로 취직, 결혼할 때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거친다는 스토리다. 당시 2만5,000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무려 6억달러의 수익을 내며 전설적인 흥행기록을 남긴다.
‘러브레이스’의 전반부는 린다가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낸 후 엄한 부모 집에 얹혀살다가 21세에 척 트레이너(피터 사스가드)를 만나 집을 나와 그와 결혼을 하고, 돈이 필요하다는 남편의 지시에 따라 포르노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가 되는 모습을 시간 순으로 그렸다. 영화는 6년 후 린다가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받는 것으로 후반부를 시작한다. 척의 강요로 쓰여진 가짜 자서전이 아닌 진짜 자신의 얘기를 밝힌 ‘시련’(1980)을 출간하며 출판사로부터 요구된 테스트다. (실제로도 이 책의 공동저자에게서 이러한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이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에서 보여진 평범한 스타탄생기와 달리 실제 있었던 충격적 속사정이 린다의 회상으로 드러난다. 척은 옷을 찢고 목을 조르며 강간하듯 린다를 다루고, 영화 촬영장에서도 “벗으라면 벗고 구르라면 굴러”라며 벽에 밀어던지는 것 같은 폭력을 지속한다. 매춘을 강요하고 6배의 화대를 받고 총을 들이대며 협박해 대여섯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도록까지 한다. 친정에 사정해 보지만 어머니(샤론 스톤)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살라며 돌려보낸다. 미국에서도 가정폭력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없었던 시절, 남편을 피해 도망가 보지만 그녀를 알아본 경찰은 사인만 받아챙기고 가버린다.
영화는 그녀가 제작자 앤서니 로마노(크리스 노스)의 도움을 받아 도망한 것까지만 보여주고 흐지부지 된다. 그가 린다를 빼돌린 것은 ‘목구멍 깊숙이2’(1974)에 출연시키기 위함이었는데, 포르노업계로부터 착취당하는 스토리도 생략된다. 다시 6년 후로 시간을 옮겨 래리 마르시아노라는 케이블 설치기사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사는 모습, 1980년 책을 출간하고 TV토크쇼에 나오는 모습, 부모를 찾아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영부영 해피엔딩을 맞는다. 자막으로는 53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20년간 포르노와 가정폭력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척은 그녀가 죽은 3개월 후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실만 밝힌다.
이미 린다에 대한 얘기는 모두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2부로 나눠진 플롯은 린다의 주장에 신빙성을 묻고 싶은 의도인 것인지, 세월의 흐름까지 헷갈리게 하며 대체 왜 이렇게 구성을 짰는지 의아하다. 실제 린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도 석연찮다. 보고난 이들이 왜 린다가 포르노배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불평하는 것도 당연하다. 린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분노할만한 묘사다.
남편이라며 매니저 겸 포주를 자처한 척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완전히 굴복해 무력화된 린다는 그에게 권총으로 위협당하며 강간당하듯 포르노를 찍어왔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영화는 잔인한 실체를 잘 파헤치지 못했다. 포르노배우의 일대기인데 여배우의 상반신 노출이 잠깐 있을 정도로 맨살 노출이 제한된 만큼 폭력성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예쁜 얼굴만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린다의 실제 상황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그녀를 도운 저명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79)의 역할이 쏙 빠졌다. 스타이넘은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에 스크린 뒤에서 린다가 당했던 착취와 학대에 대한 기사를 쓰고 “어찌나 심하게 정기적으로 구타와 폭행을 당했는지, 직장이 상한데다가 다리 혈관에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 보도는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스타이넘은 적극적으로 린다가 자신의 삶을 추스르고 간 이식 수술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이 간 이식이 구타로 인한 후유증인지, 결혼 전 당한 교통사고로 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린다가 겪은 끔찍한 일들에 대해 직접 밝힐 수 있도록 후견하기도 했다.
린다가 재기하고 각성하도록 만드는 주요 역할이 제거되다보니 영화는 더더욱 밋밋해졌다. 당초 스타이넘을 모델로 한 페미니스트 언론인 역할로 드미 무어(51)가 캐스팅됐다. 건강상의 이유로 무어가 하차한 후 이 역은 곧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타 세라 제시카 파커(48)로 대체됐으나, 그녀가 등장한 장면은 완전히 잘려나가고 말았다. 제작자들이 스토리를 린다가 척에게서 벗어나 가족과 융합하는데 중점을 두고 1980년에서 끝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보담당자의 전언이다.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고 전해지나 이러한 처사에 실망한 파커는 해외로 떠나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스타이넘의 비판을 안 듣고 넘어갈 수 없다. 스타이넘은 시사 후 “영화는 당의를 입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쉽게 만들어졌으나 실제는 사람들이 지켜볼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라고 평했다. “예를 들어, 척 트레이너가 러브레이스를 방으로 몰아넣으면서 윤간 당하는 장면도 영화에서는 한참 나중에 일어난 일처럼 그려졌으나, 이 사건은 그녀가 가장 먼저 당했던 폭력이다.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못했으며 그녀는 항상 남편을 ‘미스터 트레이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이 영화를 봐서는 아무도 실제 일어났던 일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는 또 린다의 비극적 말년도 그냥 뛰어넘어 버린다. 마르시아노가 건축사업 실패 후 술을 잔뜩 마시고 아이들에게 언어학대를 하고 자신에게 폭력을 쓰자 1996년 결국 이혼하고, 경제적 곤란으로 52세의 나이에 ‘레그쇼’라는 성인잡지를 위해 옷을 벗기도 했다. 이듬해 신장투석을 위해 병원에 가던 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결국 사망한다. 척은 메릴린 체임버스(1952~2009)라는 제2의 러브레이스를 발굴해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매니저와 남편을 겸했다. 체임버스는 1990년 시애틀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여성해방론자들은 너무 못생겨서 그들을 책임지고 싶어하는 남자를 구할 수 없는 여자들”이라고 이죽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굉장한 미모를 지닌 인기인이다. 스타이넘이 유명해지게 된 것도 휴 헤프너(87)가 운영하는 플레이보이 클럽에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바니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대한 르포기사를 쓰면서였다. 유명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 데이비드 베일과의 만혼으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이 포르노 영화의 실체를 알고 싶은 이들에겐 2005년 발표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Inside Deep Throat)를 보다 권할 만하다. 린다의 자매인 바버라 보어먼은 이 영화에 출연해 자신이 죽이기 전에 그가 죽은 것에 대해 낙담했다는 과격한 발언을 남겼는데, 실제 린다가 척으로부터 도망쳤을 때 “돌아오지 않으면 조카를 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린다는 이를 포함한 사유로 그를 고소했었다.
배우들의 연기변신 노력만큼은 무척 칭찬할만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청춘스타에 머무르고자 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줬으며, 왕년의 섹시스타 샤론 스톤(55)은 갈색머리의 투박한 아줌마로 과감히 분했다. 다른 배역들도 대개 어느 정도 연기를 하는 배우들로 채워져 특별히 거슬릴 것은 없지만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이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러브레이스 역에는 케이트 허드슨(34), 척 트레이너 역에는 제임스 프랑코(35)가 거명됐었다. 여주인공이 아만다 사이프리드로 바뀌게 되면서 제임스 프랑코는 젊은 시절의 휴 헤프너 역으로 출연하기로 했다. 걸죽한 목소리를 지닌 휴 헤프너의 성대모사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내성적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기에 입문했다는 제임스 프랑코는 여전히 연기자로서의 ‘끼’가 부족해보인다. 굉장한 노력형이지만 몰입도를 높일 카리스마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김태은 문화전문기자> te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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