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입니다”한인 2세들의 발목을 잡는 국적ㆍ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됐다는 기사를 보고 애리조나주에서 전화를 걸어온 올해 59세의 한 독자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오래 전에 이민을 와 미국에서 태어난 20대 아들 3명을 두었다는 이 독자는 자녀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도 혹시나 병역 문제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아들 친구는 대학 다니다 여자 친구 만나러 한국 나가서 사정상 몇 개월 체류를 했다가 군대에 징집돼 결국 대학 졸업도 못했다는데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분개했다.
선천적 복수국적 및 병역 문제와 관련된 미국내 한인 단체들의 법 개정 촉구 움직임과 헌법소원 제기 이슈를 다뤄오면서 느낀 것은 이 독자처럼 이 문제로 고민하며 고통 받고 있는 한인 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해당 법 규정들이 정확히 어떻게 돼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적법과 병역법 관련 규정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상식에 반하는 행정편의적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즉,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한국에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한인 2세 남성이 자신도 모르게 병역 자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만 18세가 된 이후에는 이를 뒤늦게 알고 대처하려 해도 38세가 될 때까지는 법률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관련 규정들은 이렇다. ‘속인주의’ 원칙의 한국법상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태어났어도 부모가 한국 국적이면 한국 국적을 자동 부여받는다. 미국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내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미국 국적을 주기 때문에 한국 국적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인 2세는 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갖는 이른바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는 것이다.
병역법상 한국 국적을 가진 모든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 1월1일부터 병역의무 대상으로 분류되는데, 문제는 여기에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미국내 한인 2세들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병역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으려면 ‘국적이탈’ 신고를 통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국적이탈은 국적법상 만 18세가 되는 해 3월31일까지만 허용되고 있다. 만약 이때까지 국적이탈을 안 하면 한국에서 군대를 마치지 않을 경우 38세가 될 때까지 아예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봉쇄’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 태생 2세들과 그 부모들이 이같은 규정을 대부분 모른 채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미국 시민권자’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18세가 넘어 한국 비자를 받을 필요가 있을 때 뒤늦게 이를 알게 되는데, 그 때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고 해도 ‘국적이탈 불가’ 규정 때문에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제기된 헌법소원은 바로 이처럼 국적이탈 기회를 제한하는 조항이 해외 한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해달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병역법 시행령에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오래 산 2세들이 병역을 미룰 수 있게 하는 ‘재외국민 2세’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도 규정이 복잡한데다 시행령일 뿐이어서 병무청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어쨌든 현재 이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내 한인 부모들과 당사자들이 가장 간절히 요구하는 것은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이 뒤늦게라도 국적이탈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할 지 두고 봐야 되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한국 정치권에 재외국민 권익 차원에서 법 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정치인들은 병역 문제에 민감한 한국의 국민정서를 내세우면서 난감한 표정이지만, ‘유예 기간’을 두거나 ‘일괄 구제’를 허용하는 등의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재외선거 도입과 함께 한국 정치인들은 그동안 앞 다퉈 동포 권익 향상을 외쳐왔는데, 이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진정 동포 권익 향상에 관심이 있고 실천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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