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집단은 ‘중산층’이다. 특히 정치에서 ‘middle class’는 민주당과 공화당, 무소속까지 모든 정치가들이 끊임없이 구애하는 짝사랑의 대상이다. 그런데 중산층은 도대체 무엇일까. 너도나도 같은 편이 되기 원하는 그 계층 속엔 당신과 나, 우리의 자리도 있는 것일까.
중산층은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최소한 모두가 동의하는 정답은 없다. 가장 알기 쉬운 기준인 연소득은 5만 달러일까, 의회가 감세기준으로 정한 25만 달러일까. 쇼핑은 월마트에서 할까, 노드스트롬에서 할까. 도심 아파트에 살까, 교외지역 내 집에 살까…어쩌면 ‘중산층’이란 그저 마음의 상태일 수도 있다. 웰페어에 별로 기대지 않아도 의식주 해결하며 마음 편하면 중산층으로 자부해도 될 테니까.
‘중산층의 수호자’를 자처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난해 말, MSN이 ‘전형적인 아메리칸 중산층’에 대한 서베이 결과를 발표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본 ‘전형적 중산층’의 9가지 라이프스타일이다.
첫째, 연소득은 4만달러에서 10만달러. 퓨 리서치센터가 집계한 4인 가족 중간연소득은 6만8,274달러이지만 퓨 조사원들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소득’의 범위를 찾아 나섰다. 결과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동부에선 8만5,000달러, 남부에선 7만 달러, 중서부에선 6만달러, 서부에선 7만 달러로 나타났다.
둘째, 쇼핑은 타겟에서.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타겟 주고객의 평균 연소득은 6만1,069달러다. 월마트 고객의 연소득은 타겟보다 1만 달러가량 낮고, K마트 고객은 월마트보다 7,000달러 정도 더 낮다.
셋째, 자녀의 대학학비를 저축하고 있는가. 자녀 대학보내기는 중산층 부모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다. 자녀를 중산층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지타운 대학 연구에 나타난 학력별 평균 일생소득의 차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고교졸업은 130만 달러, 대학졸업은 230만 달러, 박사학위 소지는 330만달러…그래서 중산층 부모의 60%가 자녀의 대학학비를 위해 저축한다. 자녀의 대학 입학 무렵 저축액의 평균은 4만8,000달러다.
넷째, 휴가를 간다. 휴가 갈 시간과 돈이 있어야 중산층이다. 온 식구가 남부 프랑스로 날아갈 만큼의 여유는 아니다. 2010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서베이에 의하면 4인 가족의 한 주간 여름휴가 평균비용은 항공료 포함 4,000달러, 해외여행은커녕 하와이도 힘들겠지만 디즈니월드에서의 1주일은 감당할 수 있고 (산불만 괜찮다면) 요세미티는 언제나 인기코스다.
다섯째, 내 집. 지난 수십년간 중산층의 궁극적 필수요건은 주택소유였다. 그런데 부동산 거품 이후 변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이 중산층 진입의 열쇠라는 퓨 여론조사 응답자가 91년 70%에서 요즘은 45%로 줄어들었다.
여섯째, 해고될 염려 없다? 중산층의 넘버원 요건은 ‘안정된 직업’이다. 주택소유, 대학교육, 투자자금…이들보다 앞선 필수조건으로 안정된 직업을 꼽은 응답자가 86%에 달했다. 아직도 1,200만명이나 되는 실직자의 불안이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드리우고 있다는 뜻이다.
일곱째, 의료보험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의료보험 없이 중병에 걸린다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덟째, 민주당 성향이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퓨 조사에 나타난 중산층의 정치성향은 민주당34%, 무소속 35%, 공화당 25%로 분류되었다.
아홉째, 은퇴 위한 투자는 해야 한다. 대학학비, 의료보험, 디즈니월드 휴가에 분배하고 나서도 은퇴준비 여윳돈이 남을 수 있을까. 웰스파고 서베이에 의하면 매달 페이먼트 막기에 고심하는 중산층이 과반수를 넘어섰다. 특히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던 상당수 한인들도 이 마지막 항목에서 탈락할지 모르겠다.
중산층에 머물기는 점점 힘들어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기 원한다. 여유자금은 전혀 없고 은퇴나 휴가를 잊고 산다는 사람이 과반수를 훨씬 넘긴 조사에서도 아직 ‘나는 중산층’이라는 응답이 80%를 넘었는가 하면 연소득 3만달러 미만의 약 3분의 1도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한다고 퓨 조사원들은 전했다.
이번 주말은 노동절 연휴다. 1894년 일리노이 주 소도시 풀만에서 대량해고와 대폭 임금삭감으로 중산층의 꿈이 좌절된 근로자들의 파업이 유혈진압으로 이어지며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비극을 위로하기 위해 그해 당장 제정된 공휴일이 노동절이다.
중산층이 탄탄했던 시절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함께하는 성장’을 강조하며 “밀물이 들면 모든 배(boats)가 뜬다”는 월가의 속담을 인용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트’는 ‘요트’로 바뀌었다. 경기가 회복되고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기업과 주주는 이윤과 소득을 불려 가는데 1억5,580만명 미 근로자 중 하위 60%의 임금은 제자리걸음, 실질소득은 10여 년 전 보다 감소했다.
너무나 많은 근로자는 물에 잠겨둔 채 소수만을 밀물에 떠올리는 건 진정한 경제회복이 아니다. 기반 잃고 흔들리는 것은 중산층만이 아니다. 부와 파워가 최고 상위에 계속 편중되면 사회자체가 불안해진다. 주저 없이 “나는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런 중산층이 편안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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