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이번 주로 6개월을 넘겼다. 재임 첫해의 절반이 지났는데 별로 보여준 것은 없이 정치적 자산은 바닥나고 갈수록 완강해지는 공화당의 반대 장벽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히고 있다. 지난 1월21일 취임 시 52%였던 지지율도 이번 주엔 45%로 내려앉았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예상보다 넉넉한 승리로 재선되면서 자신감도 넘쳐났고 ‘초당적’ 협상으로 재정절벽을 무사히 넘긴 후 취임식에선 향후 4년 진보의 이념을 실현해 나갈 원대한 비전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오바마 백악관이 실감한 것은 정치적 한계였다. 국내외 이슈들이 마치 오바마에게 반기라도 든 듯 삐걱대며 어긋나갔고 백악관이 타이밍 놓친 미숙한 대처로 허둥대는 동안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6개월이 허송되고 만 것이다.
통과를 기대했던 총기규제법은 부결되었고 이민개혁안의 장래도 아직 불안한 상태로 의회와의 협력 전망은 여전히 어둡고 국세청의 표적 세무조사를 비롯해 잇달아 터진 스캔들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이제 한 달 후면 시작될 의회와의 예산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할 것으로 모두가 경고하고 있다.
이라크 철군과 오사마 빈라덴 암살로 집권 1기 좋은 성적표를 받았던 해외정책도 금년엔 별 도움이 못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 개입에서 이집트 군부지원에 이르기까지 쉬운 해법은 하나도 없고 국가안보국(NSA) 감시프로 폭로로 미국민 뿐 아니라 해외우방들까지 분개했는가 하면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아직도 모스크바 공항에 머물며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상태를 빚어내고 있다.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협력은커녕 계속 대립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치권에 대한 여론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면서 워싱턴에 대한 혐오감이 분노를 넘어 무관심으로 바뀌고 있다. 정책은 마땅치 않아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율만큼은 언제나 높았던 오바마에겐 심각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백악관이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날 전환점 모색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지난 일요일 백악관 선임고문 댄 파이퍼는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대통령이 현 미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경제정책에 ‘재집중’하기위해 24일부터 일련의 순방 경제스피치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집권 2기의 중요한 모멘텀으로 토픽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백악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짜 스캔들’로 빚어진 혼란한 정국을 뒤로 하고 보다 중요한 근본 문제, ‘경제’로 되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24일 일리노이주 녹스칼리지에서 행한 오바마의 이번 주 첫 경제 연설의 주제는 예고한대로 ‘중산층’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 한 걸음씩 이루어온 경제성장을 자축하는 한편, 연방지출의 무자비한 대폭삭감으로 완전한 경제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공화당의 정치를 질책하면서 집권 2기의 최우선과제가 중산층 수호임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나는 단 한 가지에 관심을 집중할 것입니다. 미국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로 다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남은 1,276일의 내 임기 동안 매 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그곳이 미국이 가야할 곳, 미국인들이 가기원하는 곳이라고 나는 믿습니다”오는 10월1일부터 시작될 새 회계연도 예산안 심의와 11월 초 부채상한선 증액협상 등을 앞두고 공화당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연설이기도 한데 공화당의 반격 또한 만만치는 않다. 공화당 전국위는 연설도 하기 전에 “오바마가 ‘경제’로 전환한 것은 벌써 11번째 시도한 재탕 수법이다. 마치 낡은 차에 새 페인트를 덧칠하는 듯하다”고 야유했는가하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캔디 빠진 부활절 달걀”이라고 일축했고 일부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예산안 심의에서 다시 시퀘스터를 연장하여 대폭삭감을 관철하고 예산배정 방해로 오바마케어 시행을 저지하며 ‘정부폐쇄 볼모작전’도 불사할 것을 공공연히 다짐하고 있다.
집권 2기 첫해의 상반기는 실망스러웠다 해도 하반기에 들어선 오바마에게 만사가 다 불리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지표들이 호의적이다. 어느 대통령에게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경제 호전’인데 지난 몇 년 오바마의 경제는 기대만큼 성장은 못했어도 느리지만 꾸준한 회복세를 기록해 왔다.
오바마는 어제 첫 연설에서 심화되는 소득불평등과 임금정체 등 중산층을 절망케 하는 구조적 문제의 원인과 현상은 지적했으나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그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용도 거의 새롭지 않아 앞으로 한 달 수차례 계속될 순회연설을 통해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백악관의 설명만으론 오바마의 여름 스피치 이벤트의 효과를 아직 낙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몇 번을 재탕한 낡은 주제라 해도 ‘중산층 살리기’는 먹고살기조차 점점 힘들어지는 보통사람들에겐 언제나 절박한, 최대의 관심사다. 일자리와 헬스케어, 교육과 기후변화, 대학학비와 은퇴연금…중산층의 안정을 위한 대책을 모색하며 길을 잃었던 집권 2기의 메시지를 ‘리셋’하는 오바마의 여름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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