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만큼은 자신이 겪으며 감내해야 했던 쓰라린 상처와 아픈 고통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도록 몸은 물론 마음까지 치료해주는 소아과 의사를 꿈꾼다는 이혜섭(17·미국명 조앤·그레잇넥 사우스 고교 12학년 진급 예정)양.
8학년이던 3년 전 이유도 모르게 자주 쓰러지는 일이 반복됐고 정밀진료 후 청천병력 같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랜 치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심한 장래 희망이다. 어린 나이에 찾아온 병마로 두 차례의 대수술에 이어 수차례의 항암치료까지 견뎌내야 했지만 신체의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상처였다.
스스로를 노력형이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치료 후유증으로 기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대학 진학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선 괜스레 불안감이 앞서고 혼자 위축되는 일이 잦아졌다. 게다가 한창 사춘기인 여중·여고생 시절에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복용하는 약물 때문에 늘어난 체중도 그저 상처로만 남았다.
특히 투병 초기에는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일이 닥쳤을까?”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막연히 원망이 커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약물치료 이외에는 큰 고통 없이 지내는 지금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대통령상까지 탔을 만큼 꿋꿋하게 이겨내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가족이다. 힘든 치료 기간 동안 가족이 곁에 없었다면 결코 버텨낼 수 없었을 만큼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에서 비록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환자보다 더 고통 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성숙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된 것도 값진 수확이다.
최근에는 치과의사에도 새로운 관심이 생겨 올해 여름방학동안 치과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간접 경험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육체적인 고통으로 마음의 상처까지 겪어야 하는 어린 환자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픈 마음이 더 크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순간부터 치료 과정까지 모든 것이 바로 준비 없이 찾아온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지만 이미 어릴 때부터 될 성 싶은 떡잎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학급에 있던 다운증후군을 앓는 친구를 다른 학급 친구들은 회피하는데 급급했지만 그 친구의 짝꿍을 자원했던 일화는 학교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 학교의 배려 덕분에 1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던 5학년 때까지 줄곧 같은 반 짝꿍으로 지냈고 5학년이 되도록 제대로 글씨조차 쓰지 못하던 그 친구는 유일하게 ‘이혜섭’이란 소중한 친구의 이름만큼은 또박또박 쓸 정도로 각별했다.
부모의 유학시절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3세 때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5학년 때 오하이오를 거쳐 1년 뒤 뉴욕으로 왔던 초기만 해도 영어라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일반 이민자보다 더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미국 출생자임에도 어린 시절 오랜 한국 생활로 영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간의 환경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있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도 갓 이민 온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픈 진심 어린 준비된 마음으로 늘 자리 잡고 있다.
학교에서는 ‘오퍼레이션 스마일’이란 클럽에서 구순구개열 아동 환자의 수술을 돕는 기금모금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12학년이 되면 클럽의 회계도 맡아 자금관리도 책임질 예정이다. 5학년 때부터 갈고 닦은 플룻 연주 실력으로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밴드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투병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친구들과 맘껏 어울리지도 못했던 터라 대학에 진학하면 보다 폭넓게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며 신나게 여행도 자주하고 여러 운동도 가능한 많이 배울 생각이다.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하느라 지금은 비록 기러기 가족 신세지만 방학 때마다 만나는 아빠와의 만남이 또 다른 삶의 활력소가 되어 투병생활로 위축됐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다는 이양은 부산의 신라대학교에서 스포츠경영학을 가르치는 이상돈 교수와 차금순씨 부부의 1남1녀 중 둘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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