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보수 미디어 두 곳이 9일 공동사설을 실었다. 제목이 살벌하다 - “Kill the Bill”, 그 법안을 죽여라. 하원 공화당 의원들에게 2주전 상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죽이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민문제 처리를 서둘 필요 없다면서 아예 어떤 개혁안도 통과시키지 말고 다음 회기로 넘기라고 조언까지 하고 있다.
공화당 하원 내 초강경 반이민 의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이들 역시 국경수비강화 내용만을 담은 개별법안 조차 반대한다. 하원에서 어떤 법안이라도 통과되면 상원안과의 절충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데 혹 협상과정에서 1,100만명 서류미비자들의 신분합법화,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사면’이 포함된 개혁안이 통과될 것을 우려해서다.
‘이민개혁’은 현재 공화당에겐 그저 하나의 안건이 아니다. 개혁안 처리를 통해 당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옵션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상원안 혹은 하원 개혁안들을 부결시키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며 지연시키다가 이민개혁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 둘째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다 한발씩 양보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개혁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첫 번째 옵션은 2014년 중간선거에서 대다수 보수지역 현역들의 재선을 도와주는 단기적 이익을 얻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 보면 이민표밭과의 결별로 향후 대선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장기적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다. 2016년 대선 승리를 겨냥한 터 닦기를 시작이라도 하려면 반드시 두 번째 옵션을 택해야 한다.
사실 미국의 인구 및 사회문화적 변화의 추세를 감안한다면 ‘전국 정당’으로서의 첫 번째 옵션은 자살행위와 비슷하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빠르게 종래의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 인종은 다양해지고, 기독교 신자들이 줄어들고, 비전통적 가정은 급증하고…보수적 백인 기독교 전통가정을 핵심표밭으로 삼아온 공화당에겐 전혀 득이 되지 않는 변화다.
공화당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변화도 있다고 USA투데이는 지적한다 : ‘이민’이다. 이민유권자들은 전체 평균보다 더 종교적이고 낙태나 동성결혼 등 사회이슈에서 더 보수적이며 자영업이 많아 친 기업성향인데다가 무엇보다 숫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이민을 포용하기는커녕 ‘자진추방’ ‘성역도시’등을 앞세우며 비인도적 반이민정책을 고수해왔다. 이민개혁안이 성사되면 ‘1,100만명 시민권 취득’은 2026년부터 시작해 ‘500만명 신규 유권자’를 의미한다. 이민개혁과는 상관없이 합법이민의 시민권 취득과 미국출생 이민자녀들의 성장만으로도 이민표밭은 급격한 성장세다. 미국에서 출생한 라티노 중 투표연령 18세에 접어드는 아이들이 매달 5만명에 이르고 있다.
공화당이 이민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하면 전국정당으로서의 경쟁력은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공화당이 이민개혁안 통과를 위해 진지한 노력을 보여준다면 당의 건강한 미래를 향해 대딛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화당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용단이다. 중대 선택에 직면하기는 베이너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며 의장직을 보전하고 정치생명을 안전하게 연장하거나, 보수의 반발로 의장직을 상실할 위험을 감수하고 당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역사적 포괄이민개혁안의 하원통과를 이끌어 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그가 지난달부터 거듭해온 “하원 공화당 과반수이상이 지지하지 않으면 이민개혁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을 고수한다면 이민개혁은 자칫 ‘끝’이 될 수도 있지만 대의를 위한 용단을 내린다면 공화당 과반수가 반대한다 해도 민주당과의 협조로 ‘이민사회를 끌어안을 수 있는’ 합리적 개혁안의 하원통과를 성공시킬 파워가 그에겐 있다.
10일 오후 늦게야 끝난 공화당 의원총회 관련 1보가 전하는 포괄 개혁의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 상원안 반대는 과반수를 훨씬 넘었고 포괄개혁안보다는 개별법안으로 나누어 추진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치명적 결함이 있는 상원안 대신 하원은 한 단계씩 상식적 방식으로 처리해가겠다”고 지도부는 성명을 통해 강조했다. 모든 조치에 선행하는 ‘국경 강화’에 절대적 합의를 못 박고 있어 앞으로 내놓을 하원안과 상원안 절충 협상의 험로도 분명히 예고했다.
여름 휴회 전 처리는 물 건너간 것이다. 금년 8월, 몇 년 전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타운홀의 격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민사회엔 마음 졸이며 뜨거운 논쟁을 지켜보는 긴 여름이 될 것이다.
빠르면 가을, 아니면 연말까지 질질 끌다가 나올 금년의 헤드라인이 “결국 무산” 아닌 “마침내 통과!”가 되기를 기원하자. 그러려면 베이너의 용단에 의한 공화당의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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