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엔나 문화기행 ①음악의 도시
▶ 국립오페라 극장 밖 스크린 생생한 실황중계 세계적 공연 공짜 감상에‘역시 예술의 도시’ 모차르트·베토벤·말러… 그들의 발자취 그대로
슈테판 대성당. 모차르트의 결혼미사, 두 아들의 세례미사, 그의 장례미사가 열린 곳이다.
오페라하우스 슈타츠오퍼의 전경. 매일밤 세계 최정상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페라가 쉬지 않고 열린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체코 프라하로 문화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두 도시 모두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이제껏 다녀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았다. 특히 비엔나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도시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파리나 로마처럼 요란과 화려, 겉치레와 들뜬 풍경은 찾아볼 수 없고, 품격이 느껴지는 안정된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관광객들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거리는 깨끗했고 정돈이 잘 돼있었다. 오래된 건물들도 하나같이 완벽하게 관리돼있어 어느 골목에 들어서거나 어디로 눈을 돌려도 엽서에 나오는 풍경처럼 수려하고 쾌적했다. 과거 650년간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대국의 후손들이어서일까. 사람들도 훨씬 성숙하고 쿨하게 느껴졌다. 빈 시민들은 때론 차갑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파리지엔들처럼 건방진 것이 아니라 전부‘프로’라는 느낌이었다. 메이 정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의 인도로 9명의 아트 러버들이 돌아본 비엔나 문화순례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인 슈타츠오퍼 건물 정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이 스크린을 통해 매일밤 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이 밖으로 실황중계된다. 극장 앞 도로변에 놓인 간이의자들에는 지나던 시민들 혹은 비싼 입장료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오페라 팬들이 진을 치고 앉아 세계적인 공연을 공짜로 감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부터 나는 빈과 사랑에 빠졌다.
우리가 묵었던 곳은 슈타츠오퍼의 바로 맞은편 건물 4층에 위치한 4베드룸 아파트였다. 밤에 베란다로 나가보면 바로 길 건너 보이는 대형화면에서 오페라가 상영되고 있었다. 굳이 베란다로 나가지 않아도 극장 주변 어디서나 멋진 아리아가 들려왔다.
사실은 말러에 열광하면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빈이었고, 슈타츠오퍼였다. 1869년 개관한 이 극장은 19세기의 위대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가 10년 동안 열정을 다해 오페라를 지휘하며 빈의 음악역사를 다시 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오페라하우스의 하나다. 2차대전 때 잿더미가 됐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빈 시민들이 제일 먼저 심혈을 기울여 재건, 오늘까지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과 최고의 악단이 오페라를 연중 300회 이상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슈타츠오퍼 2층 회랑에는 로댕이 조각한 말러의 두상이 전시돼있다. 또한 별도의 건물에 마련된 슈타츠오퍼 뮤지엄에는 말러의 활동과 행적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있고, 또 다른 두상, 데스마스크와 함께 그가 사용하던 지휘봉과 모자도 전시돼있다.
비엔나는 서양음악의 정신이 뭉쳐있는 곳이다. 모차르트가 결혼하고 두 아들의 세례미사를 올렸으며 그의 영결미사가 열린 슈테판 성당이 있고, 베토벤이 수십번을 이사다니며 작곡한 곳, 세상을 떠난 집(전쟁 때 파괴돼 지금은 ‘베토벤호프’라는 이름의 새 건물이 들어서있다), 말러가 매일 아침 모자를 들고 걷던 거리,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가던 골목, 토론하고 작품을 쓰던 카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특별한 도시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 안에서 백년전에나 200년전에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만나고 일하는 모습이었다.
빈 시내의 중심에 숙소를 마련한 덕에 우리는 방문하려는 거의 모든 목적지-미술관, 왕궁, 교회, 뮤지엄, 건축물, 공원, 식당, 카페, 심지어 시장까지 모두 걸어다니며 둘러볼 수 있었다.
음악과 관련된 방문지만 꼽자면 첫날 갔던 곳은 음악에 관해 훌륭한 시설을 갖춘 뮤직 뮤지엄과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던 모차르트 하우스, 이튿날에는 슈타츠오퍼 투어와 뮤지엄에 들렀으며, 셋째날엔 음악가 묘역이 있는 중앙묘지와 슈테판 성당에서의 슈베르트 미사곡 연주회, 넷째날엔 카를 성당에서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를 들었다.
다섯째날엔 호프브루크 궁정교회에서 빈소년합창단이 연주하는 미사에 참석했고, 마지막날 밤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감상했다. 또 프라하에서도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열린 오르간 연주회에서 바로크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은 전세계의 음악팬들이 꽃을 사들고 찾아오는 곳이다. 이곳엔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 브루크너, 쇤베르크, 요한 슈트라우스 등의 묘비와 함께 모차르트의 가묘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있다.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나오듯이 묘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재활용 관에 실려 생맑스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알려진다.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빈소년합창단이 노래하는 궁정교회에서의 미사는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경험으로 남는다. 빈소년합창단은 149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가 설립했으니 올해 515주년을 맞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은 1개가 아니라 4개로 구성돼있어 한두 팀은 비엔나에 머무르고 두세 팀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회를 열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4개 팀의 이름은 소년시절 이 합창단 단원이었던 작곡가들의 이름을 따서 하이든합창단, 모차르트합창단, 슈베르트합창단, 브루크너합창단으로 불리며 1년에 총 300여회의 연주를 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2012년에 합창단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 그것도 아시안 여성이 모차르트합창단의 지휘자로 임명됐는데 바로 연세대 종교음악과를 졸업한 한국인 김보미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을 나와 비엔나 음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25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을 총 지휘감독하고 있다고 한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의 원래 역할은 호프부르크 궁정교회 미사에서 성가를 부르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전통에 따라 매주일 궁정교회에서 진행되는 일요일 미사에 참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 미사가 비엔나 관광의 필수코스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도 LA에서부터 온라인으로 티켓을 예약해서 참석하기는 했지만 관광객들이 하도 많이 오니까 당일 입석 티켓도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9일 오전 9시15분 미사에는 하이든 콰이어가 출연했고 모차르트의 미사곡이 연주됐는데, 작은 규모의 궁정교회는 우리가 앉은 좌석 뒤켠으로 관광객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사진들을 찍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특히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안이 유난히 많았는데 미사 참석이 아니라 순전히 구경온 것이 자명한 이들의 태도는 미사 내내 거슬렸다.
그런데 사실상 미사에서는 합창단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모든 성당에서의 성가대가 그렇듯 교회 뒤편 위층의 오르간 있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주, 아니 미사가 끝나면 합창단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단상으로 내려와 미사와 관계없는 노래를 한곡 선사한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교회 밖으로 나와서 기념사진을 찍기 원하는 사람들과 포즈를 취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사와 찬양이 상품이 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우습고 씁쓸한 경험이었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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