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을 기대했던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미로를 헤매고 있다. 사방에서 예기치 못했던 크고 작은 장벽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갈 길 바쁜 걸음을 늦추게 한다. 이민개혁을 앞뒤로 재며 정치적 계산에 골몰해온 민주·공화 양당이 아직도 명쾌한 정답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문제엔 양쪽 모두의 엄청난 정치적 이해가 걸려있어 초당적 합의로 작성된 개혁안 추진의 한 단계 한 단계는 상당히 민감한 이슈가 되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2기의 대표적 유산으로 포괄적 이민개혁 실현을 꼽고 있다. 이민개혁은 절대 지지를 보내온 표밭에 대해 너무 오래 미루어 온 공약이어서 이제는 지켜야 한다. 설사 공화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다 해도 통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보여주어야 하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공화당의 협조 없이 포괄적 개혁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양보 없이 공화당은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은 ‘사면’이 포함된 포괄적 이민법안을 지지하고 싶진 않아도 2016년 대선을 감안해 이민개혁안을 죽인 당사자로 보이기는 원치 않는다. 민주당은 서류미비자의 신분합법화에 장애가 될 공화당의 극단적 ‘국경강화’ 요구를 딱 거절하고 싶지만 (또 그럴 수도 있지만) 공화당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어디까지 요구하면 채택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양보하며 받아들여야 할까 - 지난 대선 직후에 비해 이민개혁안에 대한 당내 지지가 눈에 뜨이게 가라앉아서인지 공화의원 상당수는 아직 마음을 못 정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과연 어디까지 양보해 얼마나 더 포섭해야 할까를 고심 중인 것이 요즘 상원 이민개혁안의 현주소다.
요구와 양보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정해 줄 잣대가 공화당 의원들이 줄줄이 내놓은 ‘국경강화’ 수정안이다. 보다 구체적인 국경보안 강화대책을 추가 포함시키지 않으면 절대 찬성표를 던질 수 없다고 공화당 의원들은 공언하고 있다.
현행보다 국경경비를 대폭 강화시킨 상원 개혁안은 국경감시 체제 100% 완료와 밀입국자 체포율 90% 달성을 목표로 삼고는 있지만 이 목표가 신분합법화 이전에 완료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의 수정안은 국경보안 완전 달성 후에야 신분 합법화 절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못 박자는 이른바 ‘트리거’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개혁안의 핵심인 신분 합법화를 비현실적 전제조건의 볼모로 삼으려는 ‘트리거’ 수정안은 자칫 개혁안 자체를 죽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도 지난주엔 평소 합리적 보수로 신뢰받아온 공화당 존 코닌 상원의원의 트리거 조항이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국경장벽에서부터 출입국시 생체검색 시스템 완비까지 초강경 수정안이었지만 코닌과 코닌의 수정안이 끌어 모을 공화당 표에 8인방 일부가 “잘하면 70표 확보할 수도…”라며 미련을 보인 것. 그러나 전형적 ‘킬러 수정안’이어서 채택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밥 코커와 존 호븐, 두 중도파 상원의원이 ‘국경보안이 부족하다’는 공화당의 우려와 ‘신분합법화를 위협한다’는 민주당의 공포를 적절히 해소시키는 균형 잡힌 국경강화 수정안을 8인방의 지원 하에 마련 중인데, 문제는 시간이다. 본회의 심의가 시작된 지난 한 주를 계산하며, 고심하며 느긋이(?) 보낸 탓에 이번 주 상원은 상당히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리 리드 민주당 대표는 빠르면 오늘 내일 사이라도 토론 종결 투표에 회부하겠다고 경고한다. 보통은 종결투표 사흘 안에 상원본회의 최종표결이 실시된다. 국경강화 수정안 없이는 70표는커녕 60표 확보도 안심 못한다는 8인방 공화의원들의 우려 속에 모두 마음이 급했던 18일 오후, 또 하나의 복병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하원 공화당의원 과반수이상이 지지하지 않으면 이민개혁안의 본회의 상정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하원에서의 난항을 각오는 해왔으나 베이너가 공개 선언한 이상 새로운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같은 날, 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불체학생 추방유예를 중단시키는 추방재개법안을 통과시켰는가 하면 하원 법사위는 불법체류를 연방범죄로 간주하고 지역경찰에 이민법 단속을 허용하는 ‘이민악법’도 가결했다. 물론 상원을 통과할 수 없으니 입법화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하원의 강경한 반이민 기류가 물감 배어나듯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상원 개혁안을 만들어낸 민주당 4명과 공화당 4명, 8인방의 초당적 합의는 사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민주당의 부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반발하지 않도록 주도권을 양보한 채 전면에 나서지 않았고, 서로 까칠했던 존 매케인과 척 슈머는 신뢰하는 사이로 발전할 만큼 상대를 배려했으며, 매케인은 공화지도부의 압력을 외면하며 반이민파의 8인방 진입을 막아냈고, 민주당의 딕 더빈은 상원 헬스장에서 ‘티파티의 황태자’ 마르코 루비오를 설득해 ‘2013년 이민개혁’의 얼굴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초당적 합의안 마련이 아무리 어렵게 성사된 ‘역사적’ 쾌거라 해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장애들이 계속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민개혁안 처리 절차를 계속 지켜보면서 왜 연방의회 지지도가 16%까지 추락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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