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인터뷰 `자정 이전’ 줄리 델피
▶ 서로 싸우면서도 할 말이 많다는 것은 둘의 관계엔 긍정적/ 프렌치 액센트 없애려 발성 코치까지 고용 멜팅팟 LA생활 편해
현재 상영 중인 남녀 간의 긴 관계의 문제점을 살펴본 로맨스 드라마‘자정 이전’(Before Midnight)에서 9년간 함께 산 제시(이산 호크)의 사실혼 아내 셀린으로 나와 영화 내내 제시와 대화와 설전을 하는 프랑스 배우 줄리 델피(43)와의 인터뷰가 지난 5월22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델피는 영화의 각본을 호크와 감독 리처드 링크레터와 함께 썼다. 작고한 폴란드 감독 크리스토프 키슬로우스키의‘3색 연작’ 중‘와이트’에 나와 잘 알려진 델피는 나이 탓인지 과거보다 살이 토실토실하게 쪘는데 나이답지 않게 귀여운 소녀 모습이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밝고 맑은 여자로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매우 인간적이며 신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델피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중국적자로서 현재 LA에서 살고 있는데 연인 마크 스트라이텐펠드와의 사이에 4세난 아들 레오를 두고 있다.‘자정 이전’은 델피와 호크가 공연한‘동틀 녘 이전’(1995)과‘해질 녘 이전’(2004)에 이은 영화다.
<박흥진 편집위원>
*당신이 20대에 시작해 만든 첫 영화로부터 어언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당신은 삶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 사람들은 이 영화들을 내 얘기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나와 셀린은 아주 딴판이다. 나도 현재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 셀린과 난 서로 다르긴 하나 비슷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이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셀린을 딸 쌍둥이의 엄마로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매 편마다 우리는 작중인물의 나이와 같아 그들의 삶을 직접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18년간에 걸쳐 공연하고 각본도 같이 쓴 호크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라도 있는가.
- 처음부터 우리는 창조적으로 강한 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리처드와도 마찬가지다. 우린 만나자마자 같은 아이디어로 글을 썼는데 리처드가 나와 호크를 짝 지어준 것은 그가 우리 사이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이 같다. 물론 호크와 나는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다. 배우로서 창조적 관계일 뿐이다.
*그동안 호크로부터 남자에 관해 무언가 배운 것이 있는가.
- 우리 둘의 지나온 과정은 매우 멋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해상관 없이 서로를 향해 자신을 열었다. 그를 통해 남자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알게 됐고 남자에 대한 감정이입도 경험하게 됐다. 예전보다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남자들은 감정표현을 여자보다 쉽게 안 해서 그렇지 여자 못지않게 매우 민감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신은 로맨틱하며 그렇다면 “그 뒤로 둘은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는 말을 믿는가.
- 난 로맨틱하다. 그러나 실제적이기도 하다. 로맨틱하나 불가능한 일은 꿈꾸지 않는다. 남녀 간에 긴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매일 같이 남자가 당신의 침대에 꽃을 가져다놓는 일은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다. 난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노라”하는 말을 믿지만 상대와 싸움도 꽤나 할 것이다. 나의 부모는 40년간을 서로 사랑하며 살았는데 어머니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싸움도 곧잘 했다.
*영화에서 당신과 제시는 아름다운 그리스 시골길을 걸으면서도 둘 간의 관계에 대해서만 말하고 주위 경치에 대해선 별 언급이 없는데.
- 그것은 단단하게 맺어진 둘이 서로 치열하게 할 말이 많아서다. 서로 싸우면서도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오랜 관계의 사람들에겐 아주 긍정적인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주위의 사물에 대해 언급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직도 당신을 프랑스 여자라고 생각하는가.
- 내가 미국서 연기생활을 시작했을 땐 액센트가 큰 핸디캡이었다. 그래서 수년간 발성 코치를 통해 액센트를 말끔히 없애려고 공부를 했는데 아직도 좀 남아 있다. 내가 20년 전에 이곳이 왔을 땐 프랑스 배우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사정이 다르다. LA는 외국인들의 멜팅팟이어서 난 더 편하다.
*미국 국적을 딴 소감은.
- 선서를 할 때 아주 행복했다. 난 지금 12년째 미국서 살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모두에서 투표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 기분 좋다.
*프랑스인으로서 세금문제로 러시아 시민이 된 동료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웃을 일이 아니다. 현재 프랑스 실정은 좀 미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다 미쳤다. 그러나 난 배우여서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할 위치가 아니다.
*프랑스에 대해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난 파리에서 출생해 자랐는데 파리 사람들의 남의 일에 대한 오불관언적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어떤 사람이 대중환시리에 피해를 당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인데 이런 현상은 사실 파리만이 아니라 대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셀린이 제시와 싸우면서 너무 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 그것은 우리가 영화를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도록 만들려고 쓴 말들이다. 사람들은 싸울 때 반드시 옳은 말만 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상처도 주게 마련이다. 셀린이 제시에게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셀린이 제시와의 관계에서 어떤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셀린은 늘 유부남이었던 제시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어 그런 심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반드시 진심을 말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40대에 들어서 처음 영화의 20대의 자신에게 해 줄 충고가 있다면.
- 너무 걱정하지 말고 순간을 즐기라는 것이다. 난 과민하게 걱정을 하는 여자였다. 매우 민감한데다가 높은 이상을 지녀서 늘 염려 속에서 살았다. 모두 예술가인 부모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우리는 젊음을 찬양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20대란 결코 행복한 때가 아니다. 그 때는 당신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힘든 때이다. 그래서 사실 늘 걱정해야 하는 때이다.
*당신은 셀린을 어떤 여자로 보는가.
- 제시보다 독한 여자다. 그러나 둘은 싸우면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셀린은 결코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로 만약에 그녀가 희망을 포기한다면 둘의 관계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둘의 싸움에서 결국 셀린이 이길 것인데 누가 이기든 끝은 희망적이리라고 본다.
*좋은 관계의 유지 비결은.
- 전문가가 아니어서 자신은 없지만 서로 같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많이 소유해야 하고 또 그것에 동의해야 한다. 둘이 공통점이 없으면 싸움도 대화도 없게 마련이고 그런 관계는 죽은 것이다. 그리고 함께 정열을 공유해야 한다. 또 섹스도 즐겨야 한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나 그것이 사실이다. 둘이 아무 이견 없이 모두 다 좋다고 말하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실제는 늘 갈등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첫 영화에선 꿈에 살던 셀린과 제시는 이제 현실 속에 갇힌 사람들이 됐는데.
-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어른이 되고 특히 아이를 가지게 되면 여러 가지 일에 매달리게 마련이다. 책임이 무거워지는데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도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삶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이 결정에는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40대가 되면 삶이란 더 이상 옛날처럼 그렇게 곱고 로맨틱하기만 하지 않다. 그런데 요즘의 로맨틱 코미디들은 이런 것을 떠나 너무 비현실적이다.
*배우와 여자로서 나이 먹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 나이를 먹으면서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 죽는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난 암이 무섭다. 그러나 나이 먹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난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면서 살지 않았다. 난 지금도 손가락을 깨물고 다리에 털도 깎지 않는다. 변해 가는 외모에 신경을 써 봤자 그것은 어차피 내가 지는 전투다. 그저 가는 대로 내버려 두려고 한다. 나의 어머니처럼. 그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그런 것 말고 살면서 걱정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다. 난 사랑을 많이 받아 사실 행복하다. 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같은 여자를 사랑한다. 그녀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나이를 먹으니 아름답다.
*작가와 예술가로서 다른 두 문명권에서 사는 소감은 어떤가.
- 언어가 다른 두 문명권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보다 좋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보다 세계적인 사람이 됐다. 다른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됐는데 그러나 때론 파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LA가 그립고 또 그 반대로 LA에 오래 있으면 유럽이 그립다. 난 결코 1년 내내 LA에서 살 수는 없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살 수 있으니 난 참 운이 좋다. 그러나 내 아들이 커서 학교엘 다니게 되면 지금처럼 아무 때나 양쪽을 오가며 살 수는 없다. 그 땐 여름방학 때나 프랑스에 갈 것 같다. 난 내 나라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강한 문화의 나라이고 그 것은 나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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