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2년의 긴 캠페인을 끝내면서 LA는 42세의 젊은 엘리트 에릭 가세티를 ‘새로운 리더’로 선택했다. LA시장선거 사상 돈을 가장 많이 쓰고도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한 21일의 결선투표에서 탄생한 최초의 유대계, 100여년만의 최연소 시장이다.
최초의 LA여성시장을 꿈꾸던 웬디 그루얼과 초박빙의 접전을 벌일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54% 대 46%의 낙승 윤곽이 확실해진 22일 새벽,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 선 가세티는 LA시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세력들과 맞서야 했던 이번 선거는 “파워브로커가 아닌 LA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실현된” 피플 파워의 승리라고 역설했다. 금년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공무원 노조의 개입, 특히 그루얼을 전폭 지지했던 수도전력국(DWP) 노조의 막강 파워를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당선 첫날부터 워싱턴의 미디어들이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가세티는 스펙도 화려하고 자질도 충분하다. 아이비리그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USC에서 가르친 교수 출신으로 3선 시의원에 6년 동안 시의장을 역임한 그는 하이텍에서 도시계획까지 다양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행하며 지역구의 발전을 이끌어온 창의적 리더로 평가받는다.
알려진 가정생활도 평화롭고 모범적이다. “나의 비공식 캠페인 매니저”로 소개하는 옥스퍼드 동창생 아내의 내조도 든든하고, 대학시절 뮤지컬을 쓰기도 한 수준급 피아니스트인가 하면 디자인 잡지에 소개된 친환경 주택 뒤뜰에서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그리고 작년에 입양한 한 살 반짜리 딸 마야의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신임 LA시장’ 가세티의 앞길은 그러나 험난하다. 새 시장의 합리적인 협상력과 강력한 결단력을 기다리고 난제가 재정난을 비롯해 한 둘이 아니다.
이번 투표에선 LA 유권자의 80% 가까이가 투표하는 수고조차 외면했어도 새 시장에 대한 민원은 상당히 많다. “도대체 왜 도로마다 웅덩이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가로수는 왜 제때 가지치기도 못하는지, 교통체증은 언제쯤 나아질 것인지, 낡아빠진 우리 동네 공원 시설은 언제 손봐줄 것인지…”왜 온갖 수수료와 벌금은 날로 치솟는데 서비스는 계속 저하되는가. 직접적인 이유는 재정난 해소를 위해 LA시당국이 일상서비스와 관리유지비에서 수천만 달러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무원 노조가 있다.
경기침체 직전인 2007년 LA시는 수백명 경찰 증원과 5년에 걸친 시공무원 임금 25% 인상에 합의했다. 당시 시의원이었던 가세티와 그루얼 모두 동의한 계약이었다. 얼마 안가 불황이 덮치고 세수입이 줄어들면서 재정난이 가시화되었고 그 후 5년간 대대적인 감축이 단행되었다. 시 인력의 15%에 해당하는 5,300개의 일자리가 감축되었고 도로보수와 9.11 구조대를 비롯한 서비스 규모도 축소되었다. LA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당시 주저하는 동료의원들을 설득해 노조와 맞서 타협하며 공무원의 감원과 의료혜택 삭감, 서비스 축소 등 어려운 예산 삭감을 이끌어 낸 리더가 당시 시의원이었던 가세티였다.
2억 달러를 넘었던 LA의 적자는 최근 하향 조정되었다. 그래도 1억5천만 달러로 엄청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공무원 은퇴연금 지출은 예산의 20%를 차지하는 연13억 달러에 달하는 형편이고 노조는 2007년 계약 이행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 계약대로라면 새 시장이 취임하는 7월1일에 1.5%, 내년 1월1일에 5.5% 임금인상을 단행해야 한다.
지루하고 복잡한 예산숫자가 일반주민에게 체감되기 시작하는 것은 이로 인한 재정난이 각종 서비스 저하로 일상의 불편을 초래하면서부터다. 서비스를 복원시키려면 재정난을 해소해야 하고 재정난을 해소하기위해 신임 시장이 피할 수 없는 것은 노조와의 대결이라는 결론이 이번 선거에서 상당수 표의 향방을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결선의 승패를 좌우할 요소는 예선에서 탈락 후보들이 장악했던 사우스 LA의 흑인표밭과 북서쪽 밸리의 백인 보수표밭으로 꼽혀 왔다. 이번에 흑인표밭에서 선전한 그루얼은 ‘밸리에서 자라고 밸리에서 살아온 밸리 토박이’임을 강조했으나 보수 백인표 확보엔 실패했다. DWP 노조의 400만 달러 지원을 비롯해 LA공무원 노조의 전폭지지를 받은 그루얼은 재정난 해소를 위해 노조와 맞서 싸우기 힘들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신도 친노조 성향의 리버럴 정치인이면서 그루얼을 ‘노조의 후보’로 몰아간 가세티의 선거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가세티의 재정난 해결전망도 물론 밝은 편이 아니다.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임금 및 혜택 재협상만으로 LA의 재정난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입 증가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정난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낙후한 도심지학교의 개선과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체증의 해결책도 신임시장에게 기대하지만 시장에겐 교육에 대한 권한이 거의 없고 프리웨이 통제권 역시 시의 소관이 아니다. 시의회 표결에 대한 거부권이 없는 LA시장의 파워는 ‘막강’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새 리더는 새바람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어제 새벽 2시52분 가세티가 트위터를 통해 보낸 감사메시지에도 희망이 담겨있다 : “땡큐, 로스앤젤레스 - 힘든 도전이 시작되지만 다음 4년간 이 도시를 이끌게 된 것이 제겐 영광입니다. 우리 함께 다시 한 번 위대한 도시를 만들어 갑시다”과거 어느 시장보다 한인사회에 가깝게 다가온 에릭 가세티 신임시장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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