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보스턴 테러가 발생했을 때 모든 미국인이 함께 느꼈던 충격과 경악의 순간이 지난 뒤 대부분 이민사회는 거의 본능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 “범인이 제발 이민자가 아니기를!”테러 다음날 벼르고 별러온 초당적 이민개혁안을 공개한 연방 상원의원들의 마음도 같았을 것이다. 폭파범이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인 두 형제로 밝혀지면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새 이민법 상정을 눈앞에 두고 터진 이민자의 테러…난감한 타이밍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상원 법사위는 19일과 22, 23일 세 차례에 걸쳐 이민개혁안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22일 하루에만도 23명 관계자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개진한 다각도의 증언이 온종일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드림차일드의 눈물어린 호소와 반이민 그룹의 분노서린 항의, 하이텍 회사의 전문인력 필요 역설과 진보학자의 국내근로자 피해 우려가 맞서고 부딪치면서 개혁안의 여러 측면이 조명되었지만 시작부터 청문회를 압도한 것은 ‘보스턴 테러’였다.
법안 성사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하려는 ‘초당적 8인방’ 이민개혁 추진파의 기세에 눌려 설득력 있는 반대 근거를 찾지 못한 채 입지가 허약했던 보수파들이 법안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최상의 모멘텀을 얻은 듯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민개혁이 출발하자마자 부딪친 첫 복병인 셈이다.
첫날 보수파 공화당 의원들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이민제도의 맹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대해졌다”고 전제, 테러와 개혁안을 연결시키며 지연을 암시하는 발언으로 포문을 열었고 둘째 날 민주당 측이 보스턴을 “악용 말라”는 극언의 경고를 발하자 이를 반박하는 공화당의 고성이 터져 나오면서 청문회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행히(?) 마지막 날 청문회의 분위기는 좀 가라앉았다. 개혁안의 속도를 늦추려는 보수파의 기세가 잦아들면서 새 개혁안이 오히려 테러를 예방해 국가안보를 지키는데 효과적이라는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의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셋째 날의 주요증인이었던 그는 지난 한 주 보스턴 테러로 정신없이 바빴던 일정을 뻔히 알면서 “844 페이지의 법안을 다 읽기는 했냐”고 다그치는 강경보수파 공화당 초선의원 테드 크루즈의 추궁에 “상당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 읽을 수 있었다”고 의연하게 대꾸하기도 했다.
그렇게 법사위 청문회는 끝났다.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으면 5월 첫 주부터 수정안을 받아들여 법안손질에 들어갔다가 6월말, 늦어도 독립기념일 연휴 전에는 상원본회의 표결을 마칠 예정이다. 상원을 통과하려면 최소한 60표의 지지가 필요하다. 8인방 중 한명인 공화당의 린지 그래엄 의원은 통과를 낙관한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 절반의 찬성을 얻어 민주 48표와 공화 22표, 도합 70표 지지로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예언’이다.
그래엄의 장밋빛 예언이 흰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정도로 2013년 상원 이민개혁안의 정치기상도는 ‘대체로 맑음’에 속한다. 그러나 과거 실패했던 몇 차례와 비교한 맑음이지 통과를 보장하는 순항은 결코 아니다.
현 시점에서 개혁안 정치기상도에 영향을 줄 요건은 대충 3가지다.
첫째는 공포를 조장하는 테러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민자의 소행으로 밝혀진 보스턴 폭파사건이 이민법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테러발생 전부터 지연작전으로 개혁안을 폐기시키자는 것이 보수파의 원래 전략이었다. 뜻밖의 계기에 힘을 얻은 보수파의 “국가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이니 신중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 지가 관건이다.
둘째는 공화당 내분의 결과다. ‘친이민’이 공화당의 살 길이라며 개혁안을 지지하는 당 지도부와 “개혁안 통과는 민주당에만 이익을 주는 공화당의 자살행위”라며 반대하는 극우보수의 대결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개혁안이 운명이 달려있다. 8인방의 일원으로 “개혁안의 공화당 얼굴”이라고 불리는 마르코 루비오 의원의 저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티파티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보수진영의 신임을 얻고 있는 그가 보수파를 설득해 반대를 잠재운다면 개혁안의 기상도는 ‘쾌청’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셋째는 최근 상원에서의 총기규제법안 좌절이다. 총기규제는 이민개혁과 함께 상원 새 회기 초반의 양대 과제로 꼽혀왔다. 그러나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둔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과 경합주의 민주당 의원들에겐 부담스런 이슈들이다. 두 가지 다 과반수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두 가지 다 찬성표를 던지기엔 보수경향 지역구에서의 역풍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이제 총기규제는 물 건너갔으니 상당수 의원들에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이민개혁을 지지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 것이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폭파와 개혁안은 무관하다는 것이 분명해지지만 목적을 가진 공포조장은 성공 확률이 높은 게 불행하지만 현실이다.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 말라”는 비난은 백번 옳은 말이지만 만사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정치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오늘의 사회인 것도 현실이다.
보스턴 폭파범이 잡힌 19일 밤 USA투데이는 “보스턴 테러 이후 :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범행 동기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이민개혁 등 당파적 이슈에서 정치적 입지강화를 꾀해서도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연대 책임도 묻지 말라. 보스턴 형제의 삼촌은 조카들이 ‘체첸민족에게 수치를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들의 야만적 행동은 그들 개인의 수치다. 전체 체첸 커뮤니티의 수치가 아니다” - 우리에게도 힘이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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