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로워보였다. 친구는커녕 편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 하나 보기 힘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싸워야 하는 처지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2000년 2월말이니 벌써 13년 전 일이다. 애리조나 투산에서 벌어진 터치스톤 에너지 투산오픈에 출장을 갔다. 한인 최초로 PGA투어에 입성한 최경주 취재를 위해서였다. ‘지옥의 관문’이라는 Q스쿨을 통과,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카드를 따 낸 최경주는 그때 한창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소니오픈, 페블비치 프로앰, 뷰익 인비테이셔널 등 출전한 첫 3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PGA투어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개막 이틀 전 대회장에 도착, 최경주를 찾았다. 이미 페블비치와 뷰익대회에서 그를 취재했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알고 있었다. 퍼팅그린엔 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앞선 대회 땐 가족과 친지 여러 명이 함께 있었으나 이번엔 그 혼자였다. 투어 시작부터 함께 했던 전담 캐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퍼트한 볼들을 다시 모으는 것조차 그가 직접 해야 했다. 보다 못해 그린에 들어가 보조 역할을 자처하며 취재 겸 말동무 역할을 했다. 잠시 후에 캐디가 도착했지만 그는 주변 다른 캐디들과 수다를 떠느라 바빠 최경주를 돕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나중에 듣기로 그는 그때 한창 주식투자에 빠져있어 정보수집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최경주와 인근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한 뒤 모텔 로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컷 한 번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처음이니 모든 것이 생소해 어려움이 많지만 조금씩 감을 잡고 있고 조만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을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엔 당연히 힘들겠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개막 하루 전날인 수요일엔 프로앰 때문에 최경주 같은 루키는 코스에 나갈 수도 없었다. 퍼팅그린과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하는 것이 전부였다. 캐디는 이날도 뒤늦게 나타나 건성건성 시간을 보내다 가버렸고 최경주는 기자와 함께 연습을 마무리했다. 이런 모습은 대회 내내 계속됐다. 캐디는 정해진 주급 이외에 선수의 상금 일부를 받는데 최경주는 그때까지 받은 상금이 ‘제로’였으니 그런 불만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대회 첫날 최경주는 1오버파 73타를 쳐 또 다시 컷 통과가 힘들 듯 했으나 2라운드에서 3타를 줄이며 마침내 투어멤버로 첫 컷 통과의 기쁨을 맛봤다. 2라운드를 마친 뒤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면서 마침내 첫 컷 통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후련함을 숨기지 않았다.
다음 이틀간 모두 오버파를 쳐 컷 통과선수 중 최하위권인 공동 69위로 마쳤으나 최경주로선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라운드를 마친 뒤 내게 부탁을 했다. 캐디와 결별하려는데 영어가 잘 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해고 통고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실감했다. 최대한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최경주와 함께 처음으로 컷을 통과한 것에 고무됐던 그는 해고통고에 대해 과격하게 화를 내진 않았지만 불편한 기분을 감추지도 않았고 훌쩍 짐을 챙겨 가버렸다.
이후에도 최경주의 루키 시즌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에어 캐다나 챔피언십에서 첫 탑10(공동 8위)을 이루기도 했으나 결국은 투어카드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투어 첫 해의 혹독한 시련은 그를 강하게 단련시켰고 그해 Q스쿨에서 투어카드를 되찾은 그는 이듬해 첫 대회로 나선 투산오픈에서 공동 5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인 ‘탱크의 전진’을 시작했다.
11일 막을 올린 매스터스에서 최경주는 지난 2003년 이후 무려 11년 연속으로 출전했다. PGA투어의 특급선수가 아니라면 갖기 힘든 기록이다. 또 10일엔 미 골프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찰리 바틀렛상을 받았다. 꾸준한 자선활동으로 사회에 공헌한 것은 인정받아 아시아 선수론 처음으로 수상했다. 투어 14년째를 맞은 그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골퍼로 우뚝 섰다. 자기 캐디에게도 무시당할 만큼 그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이젠 뿌리 깊은 거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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